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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막장에 문화의 빛이 스며들다

입력 | 2013-05-08 03:00:00

문화예술 공간으로 부활하는 버려진 폐광들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사무실. 건물 복도의 광원들을 묘사한 그림이 당시 이곳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위쪽). 폐광 직후 미술가들이 그린 것이다. 아래쪽은 가학광산에서 전통 공연을 관람하는 시민들. 삼탄아트마인·광명시 제공

1일 오후 찾아간 강원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로 1445-44. 해발 832m, 북한산 정상(836m)과 거의 같은 고도의 이곳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새순이 돋지 않은 나무들에 땅바닥은 거무튀튀한 탄광석이 뒹굴고 있었다.

이곳은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의 자리. 우뚝 솟은 수갱탑(광원을 지하갱도로 실어 나르던 승강장치)이 이곳이 탄광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1961년 문을 연 삼척탄좌는 2001년 10월 폐광될 때까지 지역 경제의 중심이었다. 광원 3000여 명과 주민 5만6000여 명이 살았을 만큼 번성했다. 한때 ‘강아지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던 이곳은 폐광과 동시에 지역민의 80%가 타지로 떠나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문화의 봄’이 찾아들고 있다. 흉물처럼 변한 옛 탄광시설을 활용한 복합예술테마파크 ‘삼탄아트마인’이 24일 정식 개장을 목표로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탄아트마인은 삼척탄좌의 줄임말인 ‘삼탄’과 ‘예술(art)’과 ‘광산(mine)’의 합성어로 문화예술을 캐는 곳이란 뜻이다.

폐광의 문화 소생 프로젝트는 2004년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 총 110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미술관과 작가들의 주거창작공간, 극장, 예술체험시설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다.

광원들 샤워장이 있던 3층짜리 광산사무실 건물은 그 핵심 전시공간으로 변신 중이다. 1층 광원들이 헬멧에 장착된 램프를 충전하던 곳은 영상작품 전시실이 된다. 2층에는 이곳 운영을 위탁받은 솔로몬의 김민석 대표가 150여 개국을 돌며 수집한 공예품과 현대회화까지 다양한 작품 10만여 점을 전시한다. 탄광시설의 동력을 조절하던 3층 종합운전실은 삼탄역사박물관으로 꾸며져 광원들의 옷과 채탄설비 등을 전시한다.

석탄 운반차가 드나들던 수평갱에는 조각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들어선다. 24일부터 손인환 작가의 조각 ‘윤회’가 전시된다. 지하 650m까지 미로처럼 이어진 갱도에 산소를 공급하던 중앙압축기실은 아프리카 원시부족의 미술품을 담은 원시미술관으로 재탄생한다. 김 대표는 “삼탄아트마인은 검은 대지 위에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고 있다”며 “인근 하이원리조트 등과 연계한 관광상품이 개발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독특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033-591-3001

폐광산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사례는 서울 인근에도 있다. 경기 광명시에 위치한 가학광산동굴이 그렇다. 지난달 30일, 평일 낮 시간인데도 어린이 단체 관람객부터 가족 단위 관람객까지 가학광산을 찾아온 방문객이 적지 않았다.

시흥광산으로도 불렸던 이곳에선 1912년부터 주로 은 동 아연 같은 광석을 채굴했다. 그러다 1972년 대홍수로 광산 앞에 쌓아둔 광석찌꺼기가 마을로 흘러가 중금속 오염 문제가 불거지면서 문을 닫았다. 이후 가학광산은 1970년대 후반부터 새우젓 저장고로 쓰였다.

광명시는 2011년 초 이 광산을 43억 원에 사들여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광명시는 2011년 8월 총 7.8km의 갱도 중 안전점검을 거친 0.7km만 우선 개방했다. 주말이면 2000∼4000명이 방문한다. 개방 1년 만에 12만 명이 방문했다.

광명시는 광산에 공연장과 영화관, 전시장을 갖춰 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광산 내부에 성당과 다양한 시설을 갖춘 폴란드 크라쿠프 소금광산을 떠오르게 한다. 최봉섭 광명시 테마개발과장은 “국내에도 폐광을 관광자원화한 곳은 몇 군데 있지만 단순히 보존에 머무르고 있다. 문화예술 시설을 통해 광산의 가치를 더욱 차별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곳에는 300인치 스크린을 갖춘 소규모 영화관이 있다. 6월 말엔 300석 규모의 공연장도 문을 연다. 최 과장은 “광산동굴 공연장에서는 어떤 공연을 해도 색다른 느낌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복 광명심포니오케스트라 단장은 “마이크 같은 별도 음향시설을 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울림소리가 좋다”고 말했다.

문제는 콘텐츠다. 아직까지는 프로그램이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 상영과 간혹 열리는 시립합창단, 시립오케스트라 공연 정도에 머물고 있다. 상주공연단체 유치와 삼탄아트마인과 연계한 미술전시 등도 아직은 구상 단계다.

양기대 광명시장은 “광산을 미술관으로 바꾼 독일 에센 촐페라인 탄광산업단지, 중국 베이징의 군수물자 공장지대를 예술공간으로 바꾼 다산쯔 798거리를 벤치마킹해 그 못지않은 문화공간으로 일궈 가겠다”고 말했다. 02-2680-6576

정선=민병선·광명=구가인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