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민 정치부 기자
지금도 미국 언론 칼럼에서 자주 인용되는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1999∼2006년)에서 미국 대통령이 불만을 터뜨리는 장면이다. 대통령 지지도가 49%로 추락하자 “선거 캠페인 때와 같이 국민과 만나는 다양한 일정을 짜고 메시지를 준비해야 한다”며 대통령비서실장이 대통령을 설득하는 자리였다. 대통령이 싫은 내색을 비쳐도 비서실장은 “대국민담화도 몇 달간 안 하셨다. 오늘 내로 일정과 메시지를 승인해달라”고 요청해 관철시킨다.
픽션드라마지만 미국 백악관에서도 국정운영 지지도에 민감한 참모들과 여론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대통령 사이의 긴장감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다시 지난해 대선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금 청와대가 선거 때만큼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굼뜬 느낌이기 때문이다. 정부조직법 논란 때 대통령의 감정이 드러나는 기자회견을 하고, 실패한 인사를 한 달 동안이나 끌고 가는 모습은 국민을 짜증나게 했다.
최근 청와대 내부 조직이 안정되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대통령이 국민 곁에 바싹 다가가 있는 느낌은 아니다. 대통령이 현장에서 국민을 만나는 일정도 없다. 기자회견 한 번 하지 않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국정 방향을 듣지 못했다. 대선 때 약속한 국민대통합위와 청년위, 국가지도자연석회의는 모습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속도감 있게 진행하라”며 지시한 국정운영 100일 계획도 성과가 불투명하다.
허태열 비서실장은 6일 첫 직원 월례 조회에서 “지지도가 50%를 넘었다. 자신감을 갖고 60%로 가자”고 외쳤지만 이제 겨우 대선 때 득표율을 회복한 정도다.
박근혜정부는 내년 6월이면 지방선거를 통해 중간 평가를 받는다. 그 선거에서 패배하면 집권 2년차에 바로 레임덕을 맞게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 실천도 요원해진다. 국정운영을 선거와 같이 바로 앞만 보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청와대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은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빨리 파악해 방미 중인 대통령이 귀국한 이후 메시지와 일정, 정책으로 긁어줄 수 있는 1년 플랜을 구상해야 한다. 5년도 짧다는데 1년은 더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