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2월 이른바 ‘흥남철수’ 때 정원 2000명이던 미군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피란민 1만4000명을 태우는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 동아일보DB
1950년 12월 23일 함경남도 흥남부두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쳤다. 유엔군은 중공군에 밀려 남쪽으로 후퇴하고 있었고 한국인들도 고통의 피란길에 올랐다. 23일은 흥남철수 마지막 날이었다.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7600t)가 미군의 철수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부두에서는 수많은 피란민이 두려움과 추위에 떨고 있었다. 유엔군과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 로버트 러니 사무장 등 선원들은 피란민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미군보다 피란민을 먼저 태우기 시작했다.
미국 선원들은 “하느님께 운을 맡기자”고 외쳤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00명 이상 태우기 어렵다던 배에 약 1만4000명의 피란민이 탄 것이다. 같은 달 25일 빅토리호는 무사히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2박 3일의 항해 중 피란민 임신부들에게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 선원들은 그 아기들에게 ‘김치(kimchi) 1’ ‘김치 2’ ‘김치 3’ ‘김치 4’ ‘김치 5’라는 별칭을 붙였다. 빅토리호는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배로 2004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정부는 애초 박 대통령의 이번 방미에 흥남철수 중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5’ 수의사 이경필 씨(63)를 동행시키는 방안도 검토했다. 유엔군과 미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이 씨가 훌륭하게 성장해 한국의 지성인이 된 과정이 성공적인 한미동맹을 상징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정 조율 문제 등으로 성사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흥남철수의 상징인 빅토리호는 노후해 사라졌지만 그 자매선이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운항하고 있다. 정부는 이 배가 한미동맹의 휴머니즘을 상징하는 만큼 한미동맹 60주년인 올해 한국에 입항시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윤완준 기자·워싱턴=이재명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