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훈 사회부 차장
사기(史記)에 등장하는 말로 ‘백성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뜻이지만 실상 이 말을 유명하게 한 건 북한 김일성 주석이다. 김일성은 1992년 4월 발간한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서 “이민위천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라고 했다. 북한 헌법 서문에도 ‘김일성 부자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이 글귀는 주체사상 자체를 함축한다.
대표 종북주의자 집에 이보다 어울리는 족자가 있을 수 없다. 김일성 3대(代)가 인민을 하늘로 여겼는지와 상관없이 이석기의 종북 다짐은 그만큼 결연해 보였다.
이석기의 종북활동은 2002년 민혁당 사건에서 뿌리가 드러난다. 그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채택한 민혁당 사건으로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공안사건이 많지 않았던 김대중 정부 때의 판결이라 조작 논란도 없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석기는 ‘미 제국주의를 축출한 뒤 현 정부 타도, 민족자주정권 수립, 북한과의 연방제 통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투쟁 목표로 활동한 민혁당의 핵심 인물이었다. 김일성 생일을 축하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대학가에 배포한 혐의도 인정됐다. 북한의 지령을 받는 간첩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애국가가 입에 붙을 리 없다. 19대 국회 개원식에서 이석기와 김재연은 국기에 대한 경례 식순을 거른 뒤 나타나 애국가를 불렀다. “애국가가 왜 국가냐”고 따진 탓인지 “립싱크”라는 말까지 나왔다. 입은 벙긋거리면 되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까지 할 용기는 없었던 모양이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어디에 ‘독재의 음기’가 서려 있다는 건지, 그들의 국가 정체성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아무리 욕을 먹어도 눈 하나 깜작 안 하는 건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의미다. 그들이 잘 보여야 할 대상은 다른 쪽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연평도에 미사일을 쏴도 우리 정부의 책임을 묻는 게 그들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하며 지금까지도 김일성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 기관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국가 위협세력에게 세비까지 주는 나라가 또 있을까.
그런데도 여야가 3월 22일 공동 발의한 이석기·김재연 자격심사안은 40일 이상 방치되고 있다. 야당에서 ‘부정경선으로 기소되지 않았으니 자격심사 발의가 부적절하다’는 말이 나오는 건 여전히 그들이 국민 정서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종북을 ‘사상의 자유’로 착각하며 매카시즘 운운한 의원은 헌법부터 일독해야 한다. 이석기를 비롯한 통진당 의원과 수십 명의 보좌진이 지금도 국민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기밀을 다룬다는 생각을 하면 식은땀이 나야 정상이다.
박정훈 사회부 차장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