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과 서울 서촌 탐방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종교교회 앞에서 김창희 전 동아일보 국제부장(55)이 답사 코스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할 때까지만 해도 고개를 갸웃했다.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동쪽 사이의 동네가 그리 크고 넓은가? 전국에서 ‘역사의 밀도’가 가장 높은 동네라는 설명에도 남아 있던 의구심은 서촌 골목 어딘가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 600년 된 길 걷는 답사
저자는 답사를 출발하며 “건축물이나 탑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알렸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란 말인가. 김 전 부장은 “기본적으로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도시의 구조, 그리고 장소와 사람의 관계”라고 말했다. 답사 가이드도 예를 들어 ‘종교교회 앞 사직로8길은 600년 된 길이 확실하다’고 진단하는 식이다. 그에 따르면 사직로8길은 ‘왕의 길’이자 서촌의 남쪽 경계다.
“이성계가 왕궁을 지으며 사직단도 함께 지었습니다. 왕이 광화문에서 나와 제사를 드리러 사직단 정문으로 가는 길이 바로 여기입니다.”
이런 구조를 알아서 좋은 점은? 책의 저자들은 ‘과거의 시선이 고려된 재개발·재건축은 건폐율이나 용적률만 따지는 사업과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과거의 시선을 확인함으로써 미래의 도시를 설계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서촌’이라고 덧붙인다.
인왕산 물길이 내려오는 수성동계곡에서는 누구나 그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옛 옥인시민아파트가 철거된 장소에서 일행은 “이렇게 경치가 예쁜 곳을 얼마 전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망치고 있었단 말이냐”며 어이없어 했다. 김 전 부장은 “우리가 이제야 과거 마구잡이식 개발의 문제점을 깨닫고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옛길들은 대개 물길이기도 하다. 하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물 옆으로 사람이 다녔고, 물길 중심으로 동네가 나뉘었다. 인왕동 물길과 옥류동 물길이 합쳐지는 지점은 문외한의 눈에는 그냥 재개발을 기다리는 낡은 거리다. 그러나 길의 원형과 구조를 읽고 나면 그 위에 미처 활자가 되지 못한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서 아직도 행인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음을 깨닫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통인시장의 골목이 반원형으로 구부러진 이유가 치수 때문이었음을 알고 나면 홍수를 피해 집을 지은 장삼이사들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진다. 옥인길을 둘러싼 산수체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듣고 나면 이곳에서 시회(詩會)를 열었던 조선시대 중인들의 자부심이 마음에 전해진다. 옥인동 47번지의 넓이와 경복궁을 내려다보는 위치를 확인하면 이 땅을 독차지했던 친일파 윤덕영의 방자함과 조선왕조 몰락의 비참함에 대해 비로소 혀를 찰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서울의 도시계획은 유감스럽게도 오랫동안 이런 옛길의 역사를 외면했다. 이날 답사 코스에 포함돼 있던 사직공원의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선생 동상이 대표적이다. 김 전 부장은 “기념할 뭔가가 있어야 기념물을 세우는 건데, 이 장소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의 동상을 세웠다”고 지적했다. 저자들은 ‘오래된 서울’ 머리말에서 “서울의 지리적 역사적 맥락을 읽고 그것을 확장해 나갈 때 서울에서 훨씬 많은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고, 나아가 미래의 서울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