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貨無常主… 돈에는 정해진 주인이 따로 없다

입력 | 2013-05-09 03:00:00


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먹었다면 비록 남의 말을 모는 마부(執鞭之士·집편지사)의 직업이라도 가리지 않고 하겠다는 공자(孔子)의 돈에 대한 다부진 각오가 ‘논어(論語)’에 나온다. 돈을 버는 일이 경시돼서는 안 되고 돈을 버는 과정에서 직업의 귀천을 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유교는 돈에 대한 경멸과 가난에 대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상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정당한 방법(義)을 통하지 않고 돈을 버는 불로소득이 문제이지 돈을 버는 것은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또 가난 자체가 즐겁거나 존경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가난 속에서도 자신의 행복과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사는 것이 즐거운 일이다. 공자는 사회가 도덕적으로 안정돼 있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다면 돈을 못 버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며 오히려 가난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나라에 도가 있는데 가난하고 천하게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邦有道 貧且賤焉 恥也·방유도 빈차천언 치야).’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이 말 속에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반영돼 있다.

젊은이들이 일명 3D 업종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직업에 차등을 두고 오로지 편하고 쉬운 일에 몰려들고 있으며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 책상에 앉아 일하는 것이 더욱 고상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기업과 안정된 공무원직은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으로 넘쳐나고 중소기업과 현장 직업은 사람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직업에 대한 차별과 양극화는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며 나아가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사마천 ‘사기’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 보면 돈을 버는 데는 직업의 귀천이 없고 돈은 정해진 주인이 없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능력을 발휘하면 돈이 몰려들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직업을 가리고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부무경업(富無經業)! ‘부자(富)가 되기 위해서 일정한(經) 직업(業)은 없다(無)는 뜻이다. 부자가 되는 방법에 직업의 귀천이나 정해진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절약하고(纖嗇) 노력해(筋力) 부자가 되는 것이 돈을 버는 정도(正道)지만 때로는 모험을 하며 돈을 벌기도 하고(奇勝),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행상(行賈)을 하기도 하고, 화장품을 팔아 천금을 모으기도 하고(販脂), 음료를 만들어 팔거나(賣漿), 하찮은 기술인 칼을 갈아서 돈을 벌기도 하고((사,새,선,세,쇄,최)削), 말을 고치는 수의사 직업(馬醫)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 화식열전에 나오는 재벌이 된 사람들의 직업들이다. 심지어는 남의 무덤을 도굴하거나(掘塚), 게임이나 도박 같은 직업(博희)을 통해 재벌이 된 사람도 있다고까지 말한다. 결론적으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되려면 직업의 귀천과 일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 돈에 대한 가치관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데는 정해진 직업이 없다(富無經業). 돈도 정해진 주인이 없다(貨無常主·화무상주).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돈이 물밀듯이 몰려들 것이고(能者輻湊·능자폭주), 이런저런 직업을 따지는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가진 돈마저 와해되고 말 것이다(不肖者瓦解·불초자와해). 천금을 벌어 부자가 된 사람은 한 도읍을 소유한 임금에 비교할 수 있고(千金之家比一都之君·천금지가비일도지군), 수만금을 번 부자는 나라를 소유한 왕과 같은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巨萬者乃與王者同樂·거만자내여왕자동락). 그러니 이렇게 돈을 벌어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무관의 제왕이 아니겠는가(豈所謂素封者邪非也·개소위소봉자사비야). 소봉(素封)은 비록 봉지(封地)를 받은 귀족이 아닌 일반인(素)에 지나지 않지만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무관(無冠)의 제왕(帝王)을 일컫는 말이다. 돈을 버는 것은 존경받을 일이며 직업의 귀천을 따져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출발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