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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격동의 50년 지켜본 워커힐

입력 | 2013-05-09 03:00:00


1985년 9월 20일 남북이산가족의 역사적인 첫 상봉이 성사됐다. 남측 35명은 평양에서, 북측 30명은 서울에서 가족을 만났다. 꿈에 그리던 아들을 만난 어머니, ‘오마니 오마니’만 외치는 아들. 온 나라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남측 상봉 장소는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 그 뒤로도 남북 관련 행사는 으레 워커힐에서 치러졌다. 도심을 벗어나 한강을 내려다보는 아차산 자락에 자리한 특급 호텔은 보안과 경호에 편리했다.

▷숲 속에 흩어진 워커힐의 별장식 빌라는 정치인들의 극비 모임 장소로 선호됐다. 1999년 7월 17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는 신당 창당문제를 놓고 이곳에서 극비리에 만났다.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DJP 워커힐 회동’이 신문 1면을 장식했다. 1997년 4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가 한보 비리와 관련해 국회청문회에서 증언한 뒤 사람들 눈을 피해 권영해 안기부장과 회동한 곳 역시 워커힐 빌라였다.

▷역삼각형 형태의 레스토랑 건물은 이 호텔의 명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설계한 국내 첫 노출콘크리트 양식의 건축물이다. 지난 연말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워커힐 쇼’도 오랫동안 워커힐을 대표한 아이콘이었다. 1963년 4월 8일 호텔 개관 기념으로 미국가수 루이 암스트롱의 내한공연과 함께 시작됐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공연도 즐기는 극장식 쇼, 깃털 달린 의상을 입은 푸른 눈의 무희들이 현란한 춤을 추는 무대는 90년대 중반까지 큰 인기를 누렸다.

▷워커힐이 올해 개관 50년을 맞았다. 일본으로 휴가 가는 주한미군을 붙잡아놓기 위해 정부 주도로 지었던 호텔이다. 건립 당시 연 1만8000명의 육군교도소 복역수에 해군과 공군기술요원, 관용 불도저가 투입됐다. 호텔 이름은 6·25에 참전했다 차량 전복 사고로 숨진 월턴 H 워커 미 8군 사령관의 이름에서 따왔다. 1964년 당대의 스타 신성일 엄앵란 커플의 결혼식이 열렸고 1966년 방한한 미국 존슨 대통령이 묵었다. 워커힐은 단순한 숙박업소를 넘어 격동의 현대사를 지켜본 증인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