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
이승재 기자
빌라인 그의 집은 텅텅 비어 있었다. ‘내가 조용필의 집에 오다니!’ 하고 한껏 흥분한 나는 무슨 의처증 환자처럼 방방마다 문을 열어보면서 호기심을 채워나갔다.
“초등생 시절 조용필 형님의 사진첩을 학교 앞 문방구에서 구입해 지니고 다녔다. 당시 사진 속 조용필 형님은 맨발로 바닥에 앉아있는 포즈였는데, 그 발바닥에 새겨진 족문(足紋)을 돋보기로 유심히 살펴보니 나의 것과 매우 비슷해서 ‘나도 위대한 가수가 될 수 있겠다’는 꿈을 품었었다”고 내가 미친 소리를 했다. 그러자 조용필은 “노래 좋아해요? 우리 노래할까?”라며 자택 인근의 작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날 조용필의 집을 방문하여 내가 경험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당시 50대 중반이었던 그가 아이돌그룹의 ‘핫’한 음악을 끊임없이 듣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집에 있는 시간에는 늘 음악을 틀어놓고 마치 공기를 들이마시듯 본능처럼 모든 장르의 음악을 ‘흡입’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날 그가 거실에 있는 오디오를 작동하자마자 흘러나온 음악은 바로 ‘빅뱅’의 노래였다. 놀란 나는 “아니, 애들 음악도 들으세요?”라고 물었고, 조용필은 “음악엔 나이가 없어요. (음악은) 하나예요”라면서 “요즘 아이돌의 음악은 정말 흥미로워서 듣다 보면 내게 큰 자극이 된다”고 답했다.
올해로 63세인 조용필이 무려 10년 만에 낸 19집 앨범 속 노래들을 두고 요즘 가요계에선 난리가 났다고 한다. 모던 록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들려주는 ‘바운스’ 같은 노래를 철없는 10대들이 “심장이 빠운스 빠운스 두근대”라며 너도나도 음원을 내려받는 현상이 신기하고 충격적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의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는 조용필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는 내게는 ‘조용필의 귀환’이 외려 당연한 일로만 여겨졌다. 그는 성공적인 과거에 포만감을 느끼기보다는 알 수 없는 미래로 자신을 용감하게 던지면서 끊임없이 배고파할 줄 아는 진정한 혁신가였던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의 생각은 지난달 ‘전설의 주먹’이란 영화를 의욕적으로 내놓은 한국 상업영화의 ‘전설’ 강우석 감독에 미치게 되었다. 한때 언론들은 ‘조용필은 19번째 앨범으로, 강우석은 19번째 영화로 돌아왔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두 거장을 동일시했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강우석의 19번째 영화는 개봉 한 달 가깝도록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이고 있다.
나는 거두절미한 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강우석의 직설화법이 요즘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조용필은 자신이 한 번도 잘 해본 적이 없는 세계에 도전했고, 강우석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세계를 또다시 복제해냈다는 점이다. 2003년 ‘실미도’를 통해 국내 최초로 ‘1000만 관객’ 신화를 쓴 강우석은 10년이 지난 지금 관객의 속내를 대신해 등장인물들이 미친 듯이 울분을 토해내는 동일한 정서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