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연극 ‘푸르른 날에’ 3년 연속 주연 맡은 이명행
큰 키(181cm)에 깡마른 체형(70kg)을 지녔지만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목청을 지닌 배우 이명행. 동안으로 해맑게 웃고 있는 이 배우는 애가 둘이나 되는 유부남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3년 전 5·18 광주를 그린 연극 ‘푸르른 날에’(정경진 작, 고선웅 각색·연출)가 초연됐을 때 그의 연기를 본 연극인 대다수의 평이었다. 속사포 같은 대사를 쏟아내면서 과장된 몸짓으로 웃음과 눈물을 넘나든 그의 연기에선 리얼리즘 연기를 넘어선 광대 기질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이 작품은 2011년도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지난해엔 재일교포 극작가 김봉웅(쓰카 고헤이) 원작의 ‘뜨거운 바다’(고선웅 연출)에서 도쿄 경시청의 엘리트 부장형사 기무라 덴베 역으로 폭발적 연기를 선보였다. 비장미 넘치는 표정으로 등장해 준엄한 법의 심판자를 자처하면서 남녀 문제에 있어선 치졸하기 그지없는 인물을 예의 속사포 같은 대사와 기상천외한 몸짓으로 연기했다. 관객들은 속삭였다. “저 배우 도대체 누구야?”
그의 존재감은 올해 3월 공연된 번역극 ‘히스토리 보이즈’(앨런 베넷 작, 김태형 연출)에서도 빛을 발했다. 학생들에게 인문학의 도발적 매력을 일깨우면서도 정작 자신은 수줍음 많은 동성애자라는 이중적 매력을 지닌 역사교사 어윈을 연기한 배우 이명행(37)이다.
“제가 원래 배우로 목청은 타고났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몸놀림이 둔하다고 별명이 ‘멍’이었어요. 그러다 엄청난 대사량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야 하고 움직임도 많은 선웅이 형 작품을 하면서 배우로서 새로운 경지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에게 배우로서 확신을 심어준 작품이 바로 ‘푸르른 날에’다. 그는 2011년 초연 이후 3년째 5월마다 공연 중인 이 작품의 주인공인 민호의 젊은 날을 연기해오고 있다. 민호는 5·18 광주에서 벌어진 국가폭력 앞에서 제자와 동지를 배반하고 목숨을 구걸했다는 죄의식으로 광인이 되는 비극적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단지 비극적 톤에만 머물지 않고 정극과 신파극,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며 묘한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한을 끌어낸다.
“무대에선 제가 웃음과 눈물을 함께 안겨드리지만 제 출연분량이 끝나고 무대 뒤로만 나오면 펑펑 눈물을 흘려서 다른 배우들이 저를 품에 안고 달래줍니다. 그렇게 가슴 아픈 배역인데도 5월마다 민호가 될 것을 생각하면 너무 행복해져요. 그래서 ‘아. 배우가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고마운 배역입니다.”
6월 2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1만5000∼2만5000원. 02-758-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