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경제 훈풍 부는데 한국만 소외… 9일 금통위 금리 인하 여부 촉각
기준금리 인하 문제로 촉발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의 대립은 날이 갈수록 악화돼 이제는 양측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게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온다.
○ 가시적 엔저 대책 없는 경제팀
현 부총리는 8일 벤처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환율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며 대답을 피했다. 이전에도 그는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환율 개입은 득보다는 실이 크다”며 시장 불개입론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일본이 무차별 양적완화로 사실상 경쟁국에 대해 ‘경제 전쟁’을 선포한 마당에 수출기업 대출지원, 환율 모니터링 강화 등 단기 미봉책에만 급급한 것은 지나치게 한가한 상황인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상대가 대포를 쏘는데 구식 소총으로 대응하는 꼴이라는 것.
한국이 이처럼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는 사이 일본은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사실상 아베노믹스에 대한 ‘면죄부’를 따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적정 환율을 유지하겠다’ 정도의 의사표명은 해줘도 괜찮을 텐데 이번 정부는 환율 정책에 대한 뚜렷한 견해를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 금리 움직임 OECD 회원국과 반대로
그러나 김중수 한은 총재의 인식은 이런 흐름과 점점 더 반대쪽으로 가고 있다. 그는 이달 초 인도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3(한중일)’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지난해 기준금리를 총 0.5%포인트 인하한 것도 굉장히 큰 것이다. 어디까지 가란 것인가”라며 사실상 금리인하를 거부했다. 9일 열릴 5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한은이 기존 태도를 유지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경제전문가들은 다른 나라가 모두 금리를 내릴 때 한국만 금리를 그대로 두면 원화가치가 올라 수출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경제전망은 스스로 계속 낮추면서 금리는 그대로 두고 있는 한은의 정책 스탠스는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시장에서는 오래전부터 김 총재의 화법과 정책에 대한 불신이 쌓여 있었다”며 “금리동결을 주장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위기 상황에 개인적 소신과 ‘한은 독립’을 고집하는 모습이 이제는 거의 ‘몽니’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 시장 “경제 리더십 존재감이 없다”
경제팀의 리더십이 상처를 입으면서 기준금리를 둘러싼 정부와 한은 간의 불협화음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현 부총리는 지금까지 수차례 한은의 금리 인하를 우회적으로 주문했지만 한은은 정면으로 반발하는 모양새다. 그동안 “김 총재와 사적으로 자주 만난다” “서로 경기 인식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해 온 현 부총리의 해명이 무색해질 정도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로서 현 부총리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당국자는 “현 부총리가 학자풍이라서 그런지 논리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관료들을 휘어잡거나 설득하는 면은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라고 말했다.
경제부총리의 존재감이 약하다 보니 정책의 강도나 효과도 약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투자활성화 대책 발표를 앞두고 현 부총리는 “털 건 털고 가겠다”며 규제완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지만 정작 수도권 입지규제, 투자개방형 병원 유치·확대 등 ‘뭉텅이 규제’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