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하는 건축’ 화두 제시한 日 세계적 건축가 구마 겐고 도쿄대 교수 내한
8일 오후 400석 규모의 서울 홍익대 가람홀을 가득 메운 청중 앞에서 강연하는 구마 겐고 도쿄대 교수. 세계 곳곳에서 설계 작업을 하는 구마 교수는 “해외 출장을 다닐 때는 무거운 트렁크가 필요 없도록 재킷 하나에 티셔츠 몇 장만 가지고 다니며 갈아입는다”고 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2004년 번역 출간된 저서 ‘약한 건축’에서 ‘지는(defeated) 건축’이라는 개념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 도쿄대 교수(59). 최근 내놓은 신간에선 ‘연결하는 건축’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다. ‘지는 건축’이란 건축가의 주관을 내세우기보다 건축주나 사회의 요구, 건물이 들어서는 지역의 환경을 포용하는 것을 뜻한다. 그럼 연결하는 건축이란 무엇일까. 강원 춘천시에 들어설 NHN 연수원 설계와 홍익대,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강연을 위해 7일 방한한 구마 교수에게 물었다.
“지는 건축이란 건축이 모뉴먼트(기념비)가 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로 지는 건축이라는 수동적인 개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건축가는 적극적으로 공동체 형성을 유도해야 합니다.”
① 지난달 2일 일본 도쿄 긴자에 새로 들어선 일본 전통극 공연장 가부키자. 일본 건축가에게 가부키자 설계는 명예로운 일이다. 구마 겐고는 과거와 현재, 사람과 사람을 잇는 건축물이 되도록 옛 가부키자 분위기를 살리고 도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으로 설계했다. 미쓰마사 후지쓰카 제공 ② 구마 겐고 교수가 지난해 완공한 일본 도쿄의 아사쿠사 문화관광정보센터. 그는 “땅을 딛고 생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아 1층짜리 주택 설계에 관심이 많다” 고 했다. 경사진 지붕의 작은 집을 여러 채 쌓아올린 듯한 디자인으로 단층 주택의 자연스러움을 살린 점이 인상적이다. 다케시 야마기시 제공
3·11 대지진은 일본 사회에서 전환점이 됐다.
“전후 일본인들은 인공이 자연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자연이란 어마어마하게 강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죠. 지진해일(쓰나미)에서 살아남은 건축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무로 지은 작은 오두막이에요. 콘크리트 빌딩은 사라졌지만 자연에 대항하지 않고 어울리는 건축물은 견디어냈지요.”
그는 정권 교체와 대지진의 경험이 ‘부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전 정권을 부수고 정권 교체를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지금은 부수는 것보다 다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을 수십 차례 방문했다는 구마 교수는 한국의 공공 건축물이 비판받는 이유도 연결자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년의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내는 스타 건축가에게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의 건축가와 젊은 건축학도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1990년 버블 경제가 끝나고 10년간 일감이 없었어요. 당시 위기를 극복하려고 애썼던 것이 지금 제 건축의 기반을 만들었지요. 젊은 시절 미국 뉴욕에 가니 일본 전통 건축이 보이고, 건물 하나 없이 뱀과 모래만 있는 사하라 사막에 머물면서 오히려 건축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