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 엄마된 에이미처럼 5월은 ‘사랑의 도장’ 찍는 달
캐럴 발라드 감독의 1996년 작품 ‘아름다운 비행(Fly away home)’은 어린 시절을 보낸 뉴질랜드에서 엄마를 잃고 낯선 캐나다로 날아가는 에이미의 슬픔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첫 번째 비행은 전혀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시작한다.
아빠가 살고 있는 시골 마을은 대자연 그 자체. 하지만 에이미는 슬픔을 견딜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의 광활한 숲을 개발업자들이 밀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망가진 숲 사이를 배회하던 에이미는 쓰러진 나무 아래서 캐나다산 야생 거위 알을 발견한다. 둥지는 이미 부서졌고 어미 거위들은 사라져 버렸다. 갑작스럽게 엄마를 잃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야생 거위의 알들. 에이미는 조심스럽게 알들을 헛간으로 가져온다. 그러곤 백열전구로 따뜻한 불빛을 쬐어 주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위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그런데 새끼들이 어른 거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긴다. 캐나다 야생 거위는 철새다.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날씨와 먹이를 찾아서 남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어미 거위를 따라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철새는 비행경로를 한 번만 학습하면 자신이 왔던 길을 정확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두 번째 이동부터는 어미 거위의 안내가 필요 없다. 그런데 에이미의 거위들에게는 그 딱 한 번의 첫 비행을 안내할 어미 거위가 없는 것이다.
에이미의 아빠는 동력 행글라이더를 이용해서 거위들의 이동을 돕기로 한다. 자신이 조종하는 행글라이더를 거위들이 따라오게 만들면 남쪽 철새 이동지로 안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아무리 애를 써도 거위들이 아빠를 쫓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노력을 다 해 보지만, 거위들은 아빠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해 버린다.
아빠의 모든 시도가 좌절되자 에이미는 몰래 행글라이더 조종석으로 가서 엔진의 시동을 건다. 행글라이더가 이륙하는 순간, 거위들도 에이미의 행글라이더를 따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다. 아빠는 그제야 오직 에이미만이 거위들을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에이미에게 비행 훈련을 시키기 시작한다. 마침내 에이미의 행글라이더가 여정을 시작하는 순간, 16마리 야생 거위도 완벽한 열을 이뤄 하늘을 날기 시작한다. 캐나다 온타리오를 출발한 에이미와 거위들은 4일에 걸친 비행 끝에 미국 남쪽 끝 플로리다에 도착한다.
결정적 시기에 새겨지는 사랑
이 영화는 캐나다산 야생 거위의 이동에 대한 실제 실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실 새의 ‘엄마’가 됐던 최초의 인간은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다.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그는 오리알을 인공 부화하면서 그 현장을 지킨 적이 있다. 그런데 이후 새끼 오리들은 로렌츠를 어미로 생각하고,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새끼들이 알에서 부화한 뒤 처음 보는 대상은 자신의 어미일 확률이 가장 높다. 어미는 새끼들이 부화하는 순간까지 따뜻한 체온으로 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끼들의 뇌는 알을 깨고 나오면서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본능적으로 어미로 인식하게끔 설계돼 있다.
각인이 이루어지면 그 대상에 대한 강력한 추종반응이 나타난다. 어미라고 생각하는 대상을 계속 쫓아다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각인은 가장 본능적인 형태의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지면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과 함께 있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처럼, 새끼들은 자신이 엄마라고 점찍은 대상과 물리적으로 최대한 가까이 있으려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면서 말이다.
각인은 도장을 찍듯이 마음에 자국을 새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도장은 아무 때나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결정적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적 시기는 보통 매우 짧은 순간에 지나가 버린다.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는 새끼가 부화하고 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진다. 하지만 이 결정적 시기에 일단 도장이 찍히면 새끼의 마음속에 새겨진 자국은 지워지지 않는다. 야생 거위들이 에이미를 어미로 인식하고 난 후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는 것처럼.
오리들만큼은 아니지만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도장’은 어릴 때가 아니면 찍기가 힘들다. 자녀와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어릴 때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게 좋다. 부모들이여, 바쁘다고 피곤하다고만 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당신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전우영 충남대 교수(심리학) wooyoung@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