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시대에도 여론을 움직이는 힘 ‘온라인 커뮤니티’집단 참여 통해 심층적 담론 형성… 여론 파급력 막강
왜 국정원은 오유에 댓글을 올렸을까
#인터넷 매체 이모 기자(32)가 기삿거리를 찾는 곳은 온라인 커뮤니티다. 주로 ‘네이트 판’ ‘DC인사이드’(DC)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 ‘오늘의 유머’(오유)를 관찰한다. 그는 “실시간으로 수백 개의 글이 올라오는 SNS는 확인이 어려운 반면 커뮤니티 게시판은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 비교적 빨리 소개되고 여론의 향방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호회 성격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여론을 주도하는 매체로 주목받고 있다. 정치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 직원이 댓글을 단 것으로 확인된 ‘오유’는 유머 커뮤니티이고, 검찰이 추가로 수사 중이라고 밝힌 진보 성향의 ‘뽐뿌’와 ‘보배드림’은 휴대전화와 중고자동차 관련 커뮤니티다. 보수 성향의 가입자가 많은 DC와 일베는 디지털카메라와 유머 관련 커뮤니티로 분류된다.
이후 진보가 대세이던 커뮤니티 사이트의 이념적인 스펙트럼이 좌우로 확장되고 영향력도 더 커졌다. 김유식 DC 대표는 “과거에 온라인 사이트는 주로 좌파의 영역이었으나 광우병 사태 이후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면서 우파의 목소리를 내는 커뮤니티가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 분석 업체인 랭키닷컴에 따르면 온라인 커뮤니티 중 방문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DC의 경우 PC 기준으로 일평균 40만∼50만 명이 방문하며, 모바일을 통해서도 비슷한 수가 방문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는 모바일을 통해 이용하는 이가 많다. DC와 일베, 오유는 전체 모바일 웹사이트 트래픽을 집계한 순위에서 각각 9위, 10위, 15위를 차지했다.
SNS 시대에도 커뮤니티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4월 발간한 보고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사회관계 형성 메커니즘 비교’에 따르면 커뮤니티와 SNS 이용자 1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두 가지 서비스를 모두 이용하는 비율은 55.3%, 커뮤니티만 이용하는 비율은 36.7%였다. SNS만 이용한다고 답한 이는 8%에 불과했다.
소셜미디어 분석 업체인 트리움의 이종대 이사는 “메시지가 흘러가는 통로가 SNS라면 그 메시지를 만들고 저장해 놓는 곳이 블로그나 온라인 커뮤니티다”라면서 “집단이 참여하는 커뮤니티는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보다 여론을 움직이는 힘이 크다”고 설명했다.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SNS는 개인이 가진 관계가 우선이지만 커뮤니티는 관심사가 우선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가 모이다 보면 특정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담론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는 기업의 마케팅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활용된다.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의 임성철 디지털 캠페인2팀장은 “커뮤니티가 SNS 및 인터넷 언론과 연관돼 입소문을 내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상품을 출시하거나 새로운 광고가 나오면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뿌리듯 커뮤니티 관리자에게 가장 먼저 알릴 때가 많다”고 전했다. 임 팀장은 “기업들이 커뮤니티에 실린 의견을 참고해 상품 기획에 반영하고 새 상품이 나온 후 이에 대한 여론을 커뮤니티에서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도 커뮤니티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진보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과 인증사진을 올렸다. 각 후보 캠프 대변인들은 일베를 거론하며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민주당 캠프는 “일부 일베 회원이 인터넷 여론 조작을 지시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고 주장했고, 새누리당 캠프는 “일베는 순수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공간”이라고 반박했다.
배 교수는 “SNS로 인해 온라인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SNS가 생활 기반 서비스라면 온라인 커뮤니티는 정보 기반 서비스라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면서 “당분간 그 영향력은 줄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가인·최고야 기자 comedy9@donga.com
▼ 일베 vs 오유, 베스트 글 비교해보니 ▼
오유… 가족-일상 관련 감성적 글 많아
일베는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치르며 유명해졌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선거 광고에 나온 의자가 고가품이라고 주장해 관심을 모았다. 보수 논객 조갑제 씨는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승리한 이유 중 하나로 일베를 꼽기도 있다. 오유는 이명박 정부 시절 진보적인 성격이 강해졌고 현재까지 그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 두 사이트 모두 남자들이 주로 이용하고, 10대 이용자가 많다는 통념과 달리 30대 이용자가 가장 많다(랭키닷컴 4월 기준).
다른 듯 닮은 두 사이트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까. 소셜미디어 분석업체 트리움에 의뢰해 지난달 29일부터 5월 3일까지 추천 수 500건 이상을 받은 일베의 글 400여 건과 오유의 글 80여 건을 분석했다.
이 기간에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일베의 경우 욕설(씨×, 새×)과 한국, 사람, 김치녀(한국 여성을 비하해 부르는 말), 일베, 일게이(일간베스트 게시판 이용자의 줄임말), 노무현, 이유, 정보 등이었다. 반면 오유는 사람, 어머니, 국궁, 일본, 사진, 감사, 미안, 아버지, 직원, 아빠 순으로 언급 빈도가 높았다.
이종대 트리움 이사는 일베에 대해 “오유와 달리 게시판에 실린 글에서 아군과 적군이 명확히 구분됐다”며 “친야 성향의 누리꾼과 야당 정치인, 북한, 여성, 전라도, 외국인 노동자 등을 겨냥한 욕이 많았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반감이 컸다”고 설명했다.
반면 오유 게시판에서 많은 추천을 받은 글 중에는 가족과 관련된 애잔한 이야기나 소방관의 헌신 같은 감동적인 일화가 많았다. 이 이사는 “일베에서 ‘감성팔이’라고 비난하는 오유의 성향이 드러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두 사이트에서는 공통적으로 ‘사람’과 ‘노무현’이 자주 언급됐지만 이와 연계되는 내용은 달랐다. 일베에서는 ‘사람’이라는 키워드가 주로 ‘씹선비(진지하게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 주로 진보를 비하하는 말)’에 대한 비판 등 부정적인 이야기와 연결됐다. 반면 오유에서 ‘사람’은 가족과 관련된 소소한 일상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일베에는 부정적인 내용의 글이, 오유에는 감성적 투사로 묘사하는 글이 많았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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