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위안화”vs“그래도 달러화”… 기축통화 논쟁 재점화
지난달에는 영국에 이어 프랑스가 중국과 위안화 통화스와프(외화 유동성이 부족할 때 통화를 맞교환하는 것) 협정을 체결할 뜻을 내비쳤다. 크리스티앙 누아예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프랑스에서 위안화 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중국 런민(人民)은행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최근 위안화의 영토를 넓히려는 중국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천위루(陳雨露) 중국 런민대 총장 겸 런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은 “위안화의 국제화는 중국의 ‘국가 굴기(우뚝 일어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국가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 전략을 강하게 추진하고 나서면서 2009년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G2(미국과 중국) 간의 ‘기축통화 전쟁’이 다시 가열되는 양상이다.
미국과 중국 간에 본격적으로 기축통화 논쟁이 시작된 것은 2009년 3월. 당시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런민은행장은 “어느 특정 국가의 통화(달러화)가 아닌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기축통화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전 세계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에 중국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IMF가 1969년 도입한 SDR는 미국 달러, 유로화, 엔화, 파운드 등을 가중평균해 가치를 결정하는 지불준비 수단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흔들면서 달러의 위상도 크게 떨어뜨렸다. 중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먼저 국제 금융시장에서 발언권을 높이는 작업을 추진했다. 2010년 11월 단행된 IMF 회원국의 의결권 조정에서 중국의 의결권은 3.65%에서 6.07%로 높아졌다. 독일, 프랑스, 영국을 제치고 미국, 일본에 이어 IMF 내 3위 의결권 국가가 된 것이다. 2011년 1월에는 미국 방문을 앞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워싱턴포스트(WP),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달러 중심의 세계 통화체제는 ‘과거의 유물’”이라고 말해 기축통화 논쟁에 불을 지폈다.
중국은 현재 한국 말레이시아 호주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 20개 국가 중앙은행과 약 307조 원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각 나라에 위안화를 공급하고 있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에 따르면 2011년 6월 900개였던 위안화 취급 해외 금융기관은 최근 1만 개 이상으로 늘었다. 취훙빈(屈宏斌) HSBC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15년 중국 무역의 30%가 위안화로 결제되면 위안화는 달러, 유로화와 함께 세계 3대 글로벌 결제통화로 자리 잡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 달러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구축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고한 달러화 제국에 약간의 균열이 생겼지만 달러화가 주도하는 세계경제 질서인 ‘팍스 달러리움’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출범 이후 유로화가 달러를 능가하는 기축통화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유럽 국가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역내의 금융, 재정위기로 꿈을 접는 분위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존 플렌더 칼럼니스트는 “유로존 위기로 유로화는 불안정한 모습이고, 달러를 대체할 강력한 경쟁자로 꼽혀 온 위안화는 아직 국제화가 진척되지 못했다”면서 “진정한 기축통화는 역시 달러뿐”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호시탐탐 달러의 자리를 넘보고 있지만 각종 통계를 보면 위안화의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국제 외환거래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기준 0.4%에 불과해 달러(42.4%), 유로화(19.5%), 엔화(9.5%)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중국 내에서조차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중국 런민은행의 진중샤(金中夏) 금융연구소장은 최근 한 보고서에서 “세계 외환시장은 달러가 중심이 되고 유로, 파운드, 엔, 위안화가 뒤를 받치는 ‘1+4’ 체제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