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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低 쓰나미에 백기… 환율전쟁 뛰어들다

입력 | 2013-05-10 03:00:00

■ 김중수의 韓銀, 금리인하 왜




한국은행이 9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깜짝’ 인하하면서 박근혜정부 경제팀의 경기부양책을 지지하고 나섰다. 지난달까지 저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을 거듭 강조했던 한은이 한 달 만에 자존심을 꺾은 것은 엔화 약세 가속화 등 올해 한국 경제가 헤쳐 나가야 할 파고가 당초 예상을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각국 중앙은행이 앞다퉈 금리인하와 양적완화에 뛰어들면서 격화되고 있는 ‘글로벌 환율전쟁’에 한은이 더이상 뒷짐만 지고 물러나 있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 한 달 만에 끝난 한은의 반란

김중수 한은 총재는 9일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직후 이례적으로 금리 결정 표결 결과를 밝혔다. 한은은 금통위 2주 후 회의록을 공개할 때까지 표결 결과를 비밀에 부친다.

김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이 참여한 이날 표결 결과는 5 대 1. 금리동결을 주장한 금통위원은 1명에 불과했다. 금통위원들의 의견이 3 대 3으로 갈릴 때 마지막으로 ‘캐스팅보트’를 던지는 한은 총재가 표결에 참여할 여지도 없이 일찌감치 금리인하 의견이 대세를 이룬 것이다. 한은 안팎에서는 지난달 금리동결을 주장했던 김 총재와 박원식 한은 부총재, 한은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 문우식 위원 등 한은 측 금통위원들이 금리인하로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총재는 한 달 만에 금리정책 기조가 급선회한 이유로 ‘정부와의 정책공조’를 가장 먼저 꼽았다.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이 7일 국회를 통과한 뒤 이틀 만에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경기부양을 확실히 지원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는 한은이 금리를 한 달 더 동결했을 때 생길 ‘후폭풍’을 고려해 정치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전 연일 ‘정책공조’를 강조하며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던 김 총재가 지난달 정부와 여당의 금리인하 압박이 거세지자 통화정책의 독립성 시비 등을 고려해 금리를 동결했다가 이제야 금리를 낮췄다는 것. 박형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주말까지 기준금리 동결 의지로 읽힐 수밖에 없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던 김 총재가 며칠 사이 180도 변했다”며 “통화정책의 가장 기본인 ‘예측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엔화 약세, 환율전쟁으로 경기 낙관 전망 균열

주춤했던 엔화 약세가 가속화되는 등 환율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도 한은이 금리인하에 전격 나선 배경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제의 회복세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엔화 약세의 영향으로 수출이 둔화되고 내수가 악화되는 등 당초 한은이 내놨던 낙관적인 경제전망에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리스크로 하락하던 원화가치는 최근 빠르게 상승세로 접어들면서 지난달 초까지 100엔당 1120원 선이었던 원-엔 환율이 한 달 사이 1090원대로 급락했다. 무제한 양적완화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의 여파로 한국의 4월 수출증가율이 크게 둔화되는 등 경제위기 때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이 크게 흔들리는 모양새다.

특히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해 호주 인도 등 각국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목표가 과거의 ‘물가안정’에서 ‘경기회복’ 및 ‘일자리 창출’로 급변하고 있는 것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의 새로운 역할이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 되는 마당에 한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외치며 정부의 지원 요청을 모른 척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이번 금리인하로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하로 촉발된 환율전쟁에 한국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에서 엔화 약세에 대한 국제공조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한국이 금리인하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것이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선진국이 엔화의 약세를 사실상 용인한 데다 각국 중앙은행이 자국의 경제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한은도 더이상 국제공조에만 기대기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병기·김유영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