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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도시를 세계 명품으로… 이천 ‘유네스코 창의도시’

입력 | 2013-05-10 03:00:00

어느 7급 공무원의 ‘창조경제’… 선정 주역 이진섭씨
도서관 찾아 자료 뒤지고 현장 방문… 3억 든다는 신청서 몇백만원에 완성




경기 이천시청 창의도시팀의 이진섭 씨(왼쪽)가 지난해 5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유네스코 창의도시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해 외국 창의도시 관계자들과 교류증진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7급 공무원인 이 씨는 이천시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천시 제공

경기 이천시에 사는 도자기 작가 한도현 씨(53·한석봉 도예)는 지난해 7월부터 미국 뉴멕시코 주 샌타페이에서 단독 전시회를 열고 있다. 시골의 한 이름 없는 작가가 이렇듯 세계적 문화도시인 샌타페이에까지 진출한 것은 ‘유네스코 창의도시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큰 역할을 했다.

이천시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된 것은 2010년 7월이다. 모두들 이변이라고 했다. 유네스코는 2004년부터 문화, 음악, 디자인, 공예 등 각 분야 명품도시 간 네트워크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창의도시를 지정해 왔다. 지금까지 영국 에든버러, 이탈리아 볼로냐, 독일 베를린, 미국 샌타페이 등 34곳이 지정됐다. 인구 20만 명의 한국 지방도시가 이런 세계적인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게다가 유네스코는 올해 3월 세계 창의도시 중 이천시를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선정했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이천시의 유네스코 창의도시 선정은 7급 공무원이 발 벗고 뛰어다닌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주인공은 이천시청 기획감사담당관실 창의도시팀의 이진섭 씨(44)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을 해낸 그는 창조경제를 실현하려면 ‘도전’ ‘현장’ ‘소통’이라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 도전해야 이뤄진다

2008년 11월 조병돈 이천시장으로부터 “유네스코 본부가 창의도시라는 걸 지정한다는데 한번 알아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해 2월 신설된 ‘비전전략팀’에 배속된 그는 몇 개월째 신규 사업을 찾고 있었다. 팀이라고 해봐야 팀장과 이 씨 등 2명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유네스코 건은 이 씨 몫이 됐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창의도시는 이천시가 바라보기엔 너무 높은 ‘나무’였다. 국내에서도 몇 개 도시가 준비 중이었는데 신청서를 쓰는 용역비만 3억 원이 들었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해 비전전략팀의 연간 예산은 2000만 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씨는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시정을 잘 아는 공무원이 신청서를 더 잘 쓸 수 있다”고 한 게 힘이 됐다. 그는 무작정 도서관으로 갔다. ‘이천’은 물론이고 ‘창의’ ‘문화’ ‘예술’ ‘도시’ 등을 키워드로 엄청난 분량의 문헌을 뒤졌다. 악전고투 끝에 4개월여 만인 2009년 3월 신청서 초안을 완성했다. 몇백만 원의 예산을 겨우 확보해 번역을 했고 6월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 신청서를 보냈다.

○ 답은 현장에 있다

한 달쯤 지나 유네스코 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e메일 제목은 ‘이천시의 창의도시 지원에 대한 코멘트’였다. 수정 및 보완 요구사항이 A4용지 한 장 반 분량이나 되는 것을 보고 그는 좌절했다. 탈락이라는 뜻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측의 해석은 달랐다. 선정할 뜻이 있으니 보완을 요구한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고쳐야 하지?’ 그는 막막했다. 2주일이 지나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현장에 나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기술직으로 일하며 10년 넘게 현장을 뛰어다녔지만 정작 창의도시를 준비할 때는 책에만 빠져 있었던 것이다. 꼬부랑길 끝에 있는 도요(陶窯)를 방문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방도 찾아갔다.

지역 예술인들은 한목소리로 ‘전통’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모습에 더 주목하라고 주문했다. 이는 문화의 발전, 공유, 확산을 위한 새로운 계획의 바탕이 됐다. 물론 그해 12월 제출한 2차 신청서도 완전히 새로워졌다. 이 씨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듬해 7월 그는 유네스코로부터 ‘최종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유네스코는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인 도자공예와 첨단 기술을 융합하려는 이천시의 역동성에서 창의도시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발견했다고 밝혔다.

▼ 美샌타페이 등 세계적 명소와 ‘예술 소통’ 34개 창의도시 중 최고 모범사례로 뽑혀 ▼

○ 소통이 곧 경쟁력이다

이천시는 2010년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된 뒤 해외 창의도시들과의 교류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세계적 명품 도시들과 소통을 확대하면 자연스럽게 지역 예술인들의 해외 진출 길이 열릴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도예작가 한 씨처럼 벌써 성과도 나오고 있다.

현재 가장 교류가 활발한 곳은 미국 샌타페이다. 2011년에는 샌타페이 시장 일행이 이천시를, 지난해는 이천시장 일행이 샌타페이를 방문했고 상호교류 확대를 위한 합의각서(MOA)도 체결했다. 올해는 유럽으로도 진출한다. 조 시장은 20일 출장을 떠나 도자기 도시로 유명한 프랑스 리모주, 이탈리아 파엔차와 교류협약을 맺을 예정이다.

유네스코가 이천시를 창의도시 모범사례로 꼽은 것은 이런 적극적인 소통 의지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또 유네스코는 소외계층에 효율적으로 문화를 전파하려는 이천시의 노력도 함께 치하했다.

이 씨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지만 앞으로 할 일이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