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자음과 모음’이 책 사재기를 통해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한 정황이 한 방송의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드러났다. 이 프로그램은 온라인서점 등에서 개인의 대량 구매가 이뤄지고 있는 책을 분석해 이 출판사가 간행한 3권에 대해 사재기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도서는 황석영 씨의 소설 ‘여울물 소리’와 김연수 씨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등이다. 이 출판사 대표는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며 대표직을 내놓았다. 책 사재기를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황석영 김연수 씨는 해당 작품의 절판(絶版)을 선언했다. 절판이란 배포된 책을 회수하고 더는 인쇄하지 않는 것으로 작품의 생명을 끊는 조치다. 황 씨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국내의 대표적인 문인이다. 사재기 대상이 된 ‘여울물 소리’는 그의 문학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소설이었다. 뜻깊은 작품이 ‘조작된 베스트셀러’라는 추문에 휩싸이자 일생의 명예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사재기 파문은 베스트셀러 조작이 출판계에 만연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재기 방식은 대형서점을 돌아다니며 책을 사들이는 과거의 수법과는 또 달랐다. 다수의 명의를 확보해 인터넷 서점에서 이들의 이름으로 책을 집중 구매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출판사에 명단을 제공하고 대가를 챙기는 중간 상인들이 있다는 말도 들린다. 될 만한 책을 우세한 자금력으로 밀어붙여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린 뒤 이익을 키우는 방식이다. 치밀하고 조직적인 속임수다.
지난해 국내 신간 발행부수는 2011년보다 20% 감소했다. 활자문화가 위축되면서 책이 잘 팔리지 않자 베스트셀러 조작도 쉬워졌다. 적은 부수를 사재기해도 순위권 진입이 가능하다. 사재기 파문은 불황기의 혼탁한 단면일 수 있다. 지식과 양식을 전수하는 활자문화의 진작을 위해 정부도 나서야 한다. 출판계는 공멸에 이르기 전에 ‘사재기와의 단절’을 선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