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에 일어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은 귀를 의심케 한다. 대통령의 ‘입’이라고 할 수 있는 최측근 인사가 20대 재미동포 인턴 여성과 술을 마시고 성추행을 했다. 피해 여성이 미국 경찰에 신고하고 사건이 외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한민국 국격(國格)은 땅에 떨어졌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에서 거둔 성과마저 빛을 잃었다. 모국 대통령의 방미에 고무됐던 재미동포들의 자부심도 상처를 입었다.
이남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어젯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발표한 사과문에서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번 사건의 내용을 파악한 직후 대통령께 보고드렸고, 그 즉시 조치를 취했다”면서 “앞으로 미국 측의 수사에 대해서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 수석의 발언은 사과와 함께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확산되고 있는 각종 루머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틀림없이 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사과여서 박 대통령도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건은 여러 면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박 대통령은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미국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협력의 차원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북한에 “나쁜 행동에 보상은 없다. 먼저 변화하라”는 일치된 메시지도 내보냈다. 청와대 참모의 상식을 벗어난 행실은 박 대통령의 성공적인 정상외교까지 관심 밖으로 밀어냈다.
성추행에 대해서는 정확한 진상 조사와 합당한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미 워싱턴 경찰당국의 보고서에는 “용의자가 허락 없이 엉덩이를 만졌다”는 피해자 진술이 들어 있다. 대통령 방미 기간에 잠깐 일하는 인턴에게 청와대 대변인은 ‘슈퍼 갑’이다. 윤 씨는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인턴을 술자리에 데려가고 호텔의 자기 방으로 불렀다. 두 사람의 주장이 엇갈리지만 수사기관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면 그쪽에 더 무게를 둔다.
윤 씨는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하자 도망치듯 미국을 떠났으면서도 “내가 ‘가제트 팔’(마음먹은 대로 늘어나는 로봇 팔)을 가진 것도 아니고 맞은편에 앉은 여성을 어떻게 성추행했겠느냐”며 범행을 부인했다. 귀국한 뒤 청와대 조사에서는 툭툭 치는 정도의 신체접촉이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잘못이 없다면 왜 미국에 남아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전모 낱낱이 밝히고 엄중하게 책임 물어야
윤 씨 사건은 결코 개인의 돌출 행위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함량 미달의 인사를 대변인으로 발탁한 잘못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윤 씨는 대변인이 되기 전 칼럼과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야당 후보를 지지한 새누리당 출신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창녀”라는 표현을 썼다. 또 성추행 의혹을 받는 당 소속 의원에게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새누리당을 ‘색누리당’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만 문제 삼은 꼴이다.
청와대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규명하고 윤 씨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미주 최대 여성 커뮤니티인 ‘미시USA’가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뒤에야 청와대가 윤 씨의 귀국 사실을 공개한 이유가 궁금하다. 윤 씨가 귀국한 과정도 석연치 않다. 청와대가 윤 씨의 귀국을 지시했거나 방조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있다.
청와대는 나라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이 수석이 밝힌 대로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모든 의혹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게 그나마 국격을 회복하는 길이자 하루라도 빨리 논란을 잠재우는 길이다. 이번 같은 불상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 청와대는 전체 직원의 근무 기강을 재점검하고 성희롱 예방 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