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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웰빙바람 이어 위로 열풍… 당신은 치유했나요?

입력 | 2013-05-11 03:00:00

◇허기사회/주창윤 지음/8000원·112쪽·글항아리




밥을 다 먹은 뒤, 빈 밥그릇을 보면서 느끼는 허기. 음식물로 채워지는 위장과는 별개로 또 다른 위장이 있는 듯하다. 책은 ‘빈 밥그릇의 허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잉 속에 살면서도 늘 결핍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의 귀에 솔깃한 얘기 아닐까. 문화연구를 전공한 저자가 제시한 개념인 허기사회는 시스템의 위장은 긴밀히 채워지고 있지만 정서의 위장은 점점 비워지는 상태의 사회를 지칭한다.

2012년에 발표한 논문 한 편을 단행본으로 펴낸 책의 두께는 시집처럼 얄팍하다. 하지만 문제의식이 날카롭고, 생각해 볼 화두를 군더더기 없이 제시한다. 우리나라의 현상 분석뿐 아니라 해외 정신분석학자,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촘촘하게 끌어왔다.

저자가 말하는 허기사회 징후의 하나는 ‘퇴행적 위로’다.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TV 프로그램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등 힐링을 다룬 문화상품은 수지맞는 콘텐츠로 부상했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에서도 유명인의 자서전과 일상적 문제를 해결하는 리얼리티 토크쇼가 인기를 끌었지만 일시적인 위로에 그쳤다고 분석한다. 구조적인 문제의 변화 없이 서로의 고통을 공감하는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세시봉’ 바람 역시 과거에 대한 향수에 기대고 있다.

허기사회의 또 다른 모습은 ‘나르시시즘의 과잉’으로 나타난다. 사이버 공간에서 희생양을 만들어 상대를 배제하면서 자신을 지킨다는 것이다. 또 “그러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식의 속물성에 대한 분노를 담은 풍자도 현대인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배설 방식이다.

경제적, 관계적 결핍을 허기사회의 한 원인으로 제시한 부분은 이음새가 조밀하지만 대안 제시라는 측면에서는 좀 아쉽다. 토크 콘서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실시간 소통처럼 개인의 연대로 권력의 허위를 무너뜨리는 게릴라 담론의 활성화를 주장하지만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