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사회부 차장
축제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는 산업 경제적 측면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 2010년 전국 자치단체의 축제는 1200여 개나 됐다. 올해는 800여 개로 줄었다. 상당수 축제가 주제도 모호하고 콘텐츠 경쟁력도 없이 각설이와 노래자랑, 미인대회가 등장하는 ‘종합선물세트형’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반면 뚜렷한 주제와 경쟁력 있는 축제는 성공했다.
1980년에 시작된 미국 시카고의 ‘Taste of Chicago’는 10일 동안 350만 명이 찾는다. 피자가 대표 음식이던 시카고에서 이탈리안 비프, 치즈케이크가 등장하자 일부에서 “시카고와 맞지 않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8달러짜리 쿠폰을 구입해 줄지어 축제장을 찾는다.
홍콩의 ‘와인 & 다인 페스티벌’은 대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와이너리(와인 생산 및 제조공장) 한 군데 없는 홍콩 정부는 와인의 ‘가능성’을 점치고 2008년 40%나 됐던 와인 주류세를 전면 폐지했다. 이후 홍콩은 5년 만에 영국 런던, 미국 뉴욕에 이어 세계 3대 와인시장으로 성장했다. 홍콩의 지난해 와인시장 규모는 100억 홍콩달러(약 1조4800억 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홍콩이 글로벌 와인의 킹콩이 되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대전은 교통 중심지이자, 서비스 산업의 중심 도시다. 대덕특구, 대학, 정부세종청사 공무원 등 와인을 선호하는 층이 다른 도시에 비해 많은 편이다. 한미, 한-EU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와인 수입 관세가 15% 내리면서 올 1분기 국내 와인 수입량은 34%나 늘었다. 와인을 주제로 한 축제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축제는 브랜드 선점도 중요하다. 나비가 나비축제로 유명한 함평에만 사는 게 아니고, 올해 최우수 축제로 선정된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유등(流燈)이 진주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슈와 브랜드를 선점했기에 정부와 기업의 많은 지원을 받는다.
동양인으로서는 처음 프랑스에서 와인 기사 작위를 받은 한 대학 교수는 “대전 와인 축제를 놓고 논란이 제기되자 경기와 경북 일부 자치단체가 나서 와인 축제 개최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기진 사회부 차장 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