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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신기욱]朴대통령, 갈 길이 멀다

입력 | 2013-05-13 03:00:00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미국 현지에서 한국 대통령의 방문을 바라보는 마음은 다소 복잡하다. 설렘과 함께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조바심 내지는 우려가 엉켜 있다. 이번에는 방문 기간에 터져 나온 청와대 전 대변인의 한인 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더욱 그렇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정상회담과 상하원 합동 연설이었다. 특히 전임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한 나라의 정상이 연속적으로 합동 연설을 한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만큼 한국이 미국에 얼마나 중요한 나라인지를 잘 보여준 셈이다.

개인적으론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스탠퍼드대 방문을 주관했던 기억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당시에도 유창한 영어 연설과 정제된 매너로 많은 미국인에게 감동을 주었는데 이번 방문을 통해서도 강하고 세련된 지도자라는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였다.

대부분 언론과 전문가들이 평가하듯이 이번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기대 이상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개인적 신뢰를 쌓고 대북정책 등 주요 사안에 대한 상호이해를 통해 향후 4년간 긴밀히 협조할 기반을 만든 것은 매우 중요한 성과이다.

한미 정상회담이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정상 간 신뢰를 통해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대북 유화정책의 지원을 얻는 데 실패했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대북정책을 놓고 미국과 첨예한 이견을 보였었다.

사실 박 대통령으로선 어려운 시기에 미국을 방문한 셈이다. 동북아 주요 국가에 새로운 지도자들이 들어선 가운데 북한과의 대립국면은 물론 일본과의 역사 갈등 그리고 한중관계의 새로운 정립 등 외교 안보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이 즐비했기에 방미의 의미가 크면서도 그에 따르는 부담 또한 작지 않았을 것이다.

정상회담을 통하여 박 대통령이 주창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서울 프로세스)’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이해와 협조를 얻은 것은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꾸준히 형성되어온 ‘한국 주도론’을 일단은 미국이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북한과 동북아 문제에서 한국의 역할 공간을 만든 것은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으로서는 더 많은 숙제를 안고 귀국한 셈이기도 하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동북아 지역 프로세스를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만들고 외교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본인이 구상한 남북관계 그리고 동북아 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당장은 다음 달로 예정된 중국 방문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정부에서 다소 껄끄러웠던 한중관계를 개선하고 박 대통령이 제안한 두 프로세스에 대한 중국의 이해와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중국의 도움 없이는 박 대통령의 구상이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대통령 당선 후 첫 특사를 중국에 보낸 것이나 한미중 3자 전략회담을 제안한 것 등은 점점 커져가는 중국의 역할을 감안한 시의적절한 포석이며 중국이 박 대통령에 대해 갖고 있는 호감을 외교적 자산으로 잘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5년 전 이즈음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직후 필자는 국내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환대에 취할 여유가 없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박 대통령 역시 북한문제 등 미국과 협의한 주요 정책사안에 대해 가시적 성과를 이루어내야 하며 원자력협정 개정 등 미루어 놓은 과제 해결도 시급한 문제이다.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논란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성공적인 미국 방문을 통해 만들어진 계기를 잘 살려서 모처럼 형성된 ‘한국 주도론’이 동북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