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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현대제철, 하청 노동자는 죽어도 ‘남의 일’인가

입력 | 2013-05-13 03:00:00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사고로 건설 노동자 40명이 숨졌지만 사업주에게는 벌금 2000만 원만 부과됐다. 2011년 이마트 탄현점에선 대학생 등 협력업체 노동자 4명이 질식사했지만 이마트가 문 벌금은 고작 100만 원이었다. 원청업체에 대한 처벌이 이렇게 가벼우니 대기업은 위험한 작업일수록 하청을 준다. 인건비도 줄일 수 있고 사고가 나도 책임을 면하기 쉽기 때문이다.

‘위험의 외주화(外注化)’는 안전관리를 소홀하게 만든다. 자연히 사고는 더 잦아진다. 한국에서는 산재로 연평균 2500명의 근로자가 사망한다. 2011년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근로자 10만 명당 9.6명으로 계속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미국 3.8명, 독일 2명, 일본 2.3명에 비해 많은 수치다.

현대제철에서 또 외주 기업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5명이 전기 용광로 안에서 보수공사를 하던 중 아르곤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사고 발생 전 회사 측이 전로(電爐)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아르곤가스를 주입했다. 전로를 수리할 때는 아르곤 유입을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 서둘러 보수 작업을 마치려다 발생한 사고다. 현대제철은 이번 사고 말고도 지난해 9월 이후 감전 추락 붕괴 등 6건의 사고로 4명이 숨지고 1명이 의식불명 상태다. 사고가 자주 일어나도 ‘남의 일’로 생각한 때문 아닌가.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민주노총은 현대제철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고용노동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노동부 천안지청은 특별감독 대신 2주간의 현장감독으로 대신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엔 사업주가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해 근로자가 숨지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산재 사고로 고발된 2045건 가운데 32%는 사업주 처벌이 없었고 몇백만 원 이하인 벌금형이 64%나 됐다. 사업주가 징역형을 받은 경우는 0.03%(62건)뿐인데 그나마 실형은 한 건도 없었다.

영국은 2007년 기업이 규정을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했을 경우 살인죄를 적용하는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을 제정하고 중대한 산재에는 벌금 상한선을 없앴다. 그러자 사고율이 크게 떨어졌다. 우리도 중대 사고에 대해서는 원청업체에 실질적 책임을 지우는 방향으로 법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