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재 희생 잇따르는 하청 근로자들
10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발생한 사고로 숨진 5명의 근로자는 하청업체인 한국내화 직원이었다. 이들은 작업 현장의 아르곤가스 누출 위험성을 모른 채 작업에 들어갔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산소마스크도 준비하지 못했다.
당진제철소에선 지난해 9월 이후 이번 사고 전까지 6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해 하청근로자 4명이 숨지고 1명이 의식불명에 빠졌다. 민노총은 12일 “지난해 9월 현대제철 측에서 하청업체들에 공기 단축을 지시한 이후 노동자가 계속 사망했다”며 “현대제철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으나 고용노동부는 2주간의 현장감독으로 대체했고 결국 이런 참사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 사고 희생자는 대부분 하청업체 직원들
다른 산업현장에서도 목숨을 내놓은 ‘을’의 처지는 비슷하다. 1월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컨테이너선 조립 과정에서 떨어진 선박블록에 맞아 입사 한 달째인 하청업체 직원 김모 씨(23)가 숨졌다. 2월에는 입사 2주차인 하청업체 직원 전모 씨(19)가 작업 중 추락해 사망했다. 강병재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 위원장은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원청업체는 하청업체가 맡은 작업의 환경이나 근로자의 경험 유무를 고려하지 않는다”며 “그저 하청업체 사람을 받아 현장에 투입하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3월 전남 여수 화학공장 폭발사고 때 숨진 6명도 모두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원청업체인 대림산업은 하청업체에 안전관리비용을 지급하지 않고 안전보건협의체도 구성하지 않는 등 위험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1월 하청업체 직원 1명이 숨지고 4명이 화상을 입은 삼성전자 불산 누출사고 때도 마찬가지 지적이 나왔다.
현행법상 ‘갑’인 원청업체가 죽거나 크게 다칠 위험성이 있는 일을 ‘을’인 하청업체에 떠넘겨도 제지할 장치가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유해하거나 위험한 업무 분야는 하청 도급을 주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금지 분야를 명시한 시행령에서는 화재·폭발 위험물질인 산화에틸렌, 급성 독성물질인 불산 등은 금지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민노총 충남지역본부 관계자는 “이번 현대제철 사고로 숨진 근로자 5명의 소속사인 한국내화와 현대제철은 매년 7월 금액, 공사 투입, (사고 시) 책임소재 등에 대해 재계약하는데 감독권한과 책임을 모두 하청업체에 떠넘기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현대제철은 책임을 피해간다. 지난해 9월 이후 재해로 인한 사고가 잇따랐지만 현대제철은 형사처벌은 물론이고 벌금형 처분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안전교육도 뒷전으로
원청업체는 하청업체 근로자의 안전 문제에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단기간 제한된 공정을 떠맡은 하청업체 직원들은 전체 공정 과정에서 어떤 위험이 있는지 정확히 모른 채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현행법은 한 달에 2시간씩 안전보건교육을 하도록 정했지만 원청업체는 교육을 하지 않거나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이용해 10여 분간 약식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하창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지회장은 “안전교육보다는 일상적인 작업 지시와 공정 기간 단축을 독려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하청근로자들도 일이 바쁘니 안전보건교육 증명서에 사인만 해주고 서둘러 현장에 일하러 간다”고 전했다.
산재가 발생해도 책임을 하청업체에 미루다 보니 보상도 충분하지 않다. 열악한 하청업체가 보상해줄 수 있는 범위가 좁은 탓이다. 처벌도 가볍다.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 자료에 따르면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산안법 위반으로 송치된 중대재해사건 2290건 중 징역형은 62건에 불과했다. 특히 일부 유력 대기업 원청업체는 각하 처리되거나 무혐의 처분을 받아 최소한의 처벌도 피해갔다.
박훈상·곽도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