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靑참모진 곽상도 민정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이정현 정무수석,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최순홍 미래전략수석(왼쪽부터) 등 청와대 참모진이 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에 관한 허태열 비서실장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감동 없는 사과
허 실장의 긴 사과도 감동을 주지 못한 건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린 이후 나왔기 때문이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가 청와대의 ‘귀국 종용’으로 비화하면서 권력 핵심부의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관련 언급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허 실장이 먼저 방패막이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
○ 청와대 보고 체계 혼선
이번 사태를 통해 청와대의 무너진 지휘 보고 체계와 흐트러진 공직 기강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많다.
8일 오전(현지 시간) 윤 전 대변인 사건과 관련해 첫 보고를 받은 이 수석은 박 대통령에게는 24시간이 지난 9일 오전에, 허 실장에게는 이틀이 지난 10일에야 보고했다.
이 수석은 늦게 보고한 이유에 대해 “계속해서 알아봐야 할 것들이 있었고 대통령에게 보고드릴 시간을 놓쳤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이 빽빽하다고 할지라도 대통령의 입인 대변인이 개인 사정도 아닌 성추행 의혹으로 귀국한 사실을 상관인 대통령과 비서실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게 여권 내부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한인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인 ‘미시 USA’에서 터지지 않았다면 귀국 때까지 보고하지 않고 숨겼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수석은 홍보수석실 소속인 윤 전 대변인의 상관이다. 그러나 이 수석의 주장대로 귀국을 종용한 적이 없다면 윤 전 대변인은 직속 상관인 수석의 지시도 받지 않은 채 미국을 떠나 귀국한 셈이 된다. 귀국을 종용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청와대가 귀국 과정에 개입했다는 얘기가 된다. 청와대 내에서는 “윤 전 대변인이 평소에 이 수석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던 것에 비춰 보면 귀국 종용 역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말까지 나온다. 평소에도 청와대 내 지휘 체계가 잘 굴러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허술한 수습 과정
이 수석이 박 대통령을 포함한 방미단이 귀국한 10일 밤늦게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그 내용과 주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많다. 이날 사과 내용에는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문구가 들어가 국민 정서와 동떨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허 실장에 따르면 이 수석은 귀국 당일인 10일 사의를 표명했다. 만약 기자회견 전에 사의를 표명했다면 곧 사퇴할 수석이 청와대를 대표해 사과문을 발표하는 것 자체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기자회견 후 사의를 표명했다면 당일 사과문에 사퇴 의사가 포함돼 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내부에서 첫 사과 기자회견에 공방의 당사자인 이 수석이 아니라 허 실장이 직접 나왔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마치 허 실장이 사과를 하기 싫어 이 수석이 나섰다는 느낌이고, 이 수석도 기자회견 도중 선임행정관에게 떠넘기고 나가버리는 등 상관들이 책임지지 않고 밑에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