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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벵가지보고서, 오바마판 ‘워터게이트’로 비화하나

입력 | 2013-05-13 03:00:00

美방송 “국무부서 테러언급 삭제 압력 CIA보고서 12차례 수정… 민감내용 빼”
오바마 재선위해 조직적 은폐 의혹 증폭




미국 국무부가 2012년 9월 11일 발생한 리비아 벵가지 영사관 피습 사건 보고서에서 테러 관련 언급을 삭제하라고 중앙정보국(CIA)에 압력을 가해 결국 그렇게 수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화당 의원들은 1972년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언급하며 버락 오바마 정권이 대선을 앞두고 자신에게 불리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공세를 펴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 ABC방송은 CIA가 벵가지 영사관 피습 보고서를 12차례나 수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테러 가능성을 언급한 부분은 아예 삭제됐다고 백악관과 국무부의 e메일을 분석해 10일 보도했다.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 대사 등 4명이 사망한 벵가지 영사관 피습 사건은 미국 대선을 2개월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발생해 오바마 정권이 정치적 부담을 염려한 나머지 알카에다 세력에 의한 계획적 테러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지난해 11월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CIA 보고서에서 수정한 부분은 ‘영사관’을 ‘외교 시설’로 표현을 바꾼 1곳밖에 없었다”는 발언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힐러리 클린턴이 수장으로 있던 당시 국무부는 CIA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벵가지 미 영사관 습격에 알카에다 연계단체인 ‘안사르 알샤리아’가 가담했다고 언급한 부분을 삭제하라고 주문했다. 또 CIA가 벵가지 사태가 발생하기 수개월 전 테러 가능성을 경고한 적이 있다는 내용도 지우라고 요청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수정을 거친 뒤에야 미 의회와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 대사에게 전달됐다. 라이스 대사는 이후 TV에 잇달아 출연해 알카에다에 의한 테러가 아니라 시위대에 의한 우발적 사건이라고 말했고, 이 때문에 결국 국무장관 인선 과정에서 낙마했다. 특히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대변인이 CIA에 구체적이며 광범위하게 보고서 수정을 요구했다고 ABC는 전했다.

당초 보고서에 있던 “CIA는 벵가지와 리비아 동부에서 알카에다와 연계된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수차례 내놨다…우리는 특정 개인들이 미국 시설을 감시하고 공격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적은 부분은 문단 자체가 통째로 삭제됐다. 이 문단에 대해 뉼런드 대변인은 “의회 의원들에게 국무부가 CIA의 경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할 빌미를 줄 수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식으로 삭제 압력을 가했다. 또 초안에서 ‘안사르 알샤리아’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자 뉼런드 대변인이 “우리는 조사에 편견을 심고 싶지 않다”며 특정 테러단체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에 반대해 삭제됐다. 뉼런드 대변인은 이후에도 “국무부 수장(힐러리 클린턴)과 내 의견이 완전히 반영되지 못한 것 같다”며 모두 12차례나 보고서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도록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처럼 ‘조직적인 은폐’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AP통신은 공화당이 2016년 대선의 강력한 민주당 후보로 꼽히는 클린턴 흠집 내기에 ‘벵가지’를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