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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병종]새로운 이야기 자원을 개발하자

입력 | 2013-05-14 03:00:00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 베로나…일본 ‘예술의 섬’ 나오시마…겨울연가의 남이섬…
이야기 마케팅시대, 스토리-사연 품은 지역 축제 문화특구로 만들어
한국 대표브랜드로 키워야




김병종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

“이제 수려한 풍광이나 빼어난 경치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특정 이미지가 떠올라야 하고 거기에 이야기와 사연이 어려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와 사연은 그립고 애틋하고, 특별히 예술가나 예술작품과 관련된 것일수록 좋습니다. 전 세계는 바야흐로 이야기 전쟁시대에 돌입해 있습니다.”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의 저자인 미래상상연구소 홍사종 대표는 강연 때마다 “이야기를 만들자”고 역설한다. 사람들은 풍경보다 이야기에 목말라 있고 특별히 예술가나 예술작품과 관련된 사랑과 그리움의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현대인의 삶이 메마르고 삭막하다는 방증도 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된 이탈리아 베로나가 사시사철 북적대고 동화 ‘피터 래빗’의 고향인 영국 윈더미어에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것도 그곳의 풍경이 아름다워서일 뿐 아니라 작품 속 어린 꿈과 동화의 감정을 좇아서일 것이다. 체코 프라하를 찾는 이마다 카프카를 떠올릴 것이고, 일본 니가타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 이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그 에치코 유자와 마을을 생각하며 설렐 것이다. 버려지다시피한 황폐한 섬 나오시마와 이누지마, 데시마 등에 사람들이 몰리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그 많은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이 남이섬이나 춘천을 찾는 것도 ‘겨울연가’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에 자기 사연을 얹어 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 지자체들도 이야기 마케팅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역 축제 또한 생태나 환경, 자연 축제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문화 예술 축제와도 그 성격을 달리하여 시행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바그너의 ‘바이로이트’처럼 지역 축제이면서 국가적 대표성을 지닐 만한 축제는 중앙정부가 지원하여 한국 대표 브랜드 축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신분사회의 이면상을 꼬집거나 그 한을 익살과 재담으로 풀어낸 하회탈 축제나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때 병사들이 등불에 사연을 담아 띄워 가족에게 보냈던 진주 남강의 유등(油燈)축제, 춘향과 몽룡의 애틋한 러브스토리로 유명한 춘향제 등은 그 연조만으로도 한 세기가 넘거나 가까울 정도로 오래된 한국의 대표 브랜드 축제다. 한결같이 애달프고 절절하며 그립고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뮤지컬로, 오페라로 만들어도 손색없다. 아울러 이야기가 될 만한 미완의 문화예술 자원도 계속 발굴해야 할 것이다.

‘예술의 섬’을 표방한 전남 신안군이 좋은 예다. 나라를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일뿐더러 전설적 해양상인 문순득과 종교인 문준경 이야기 등 1000개가 넘는 섬들에 무궁무진한 이야기 자원이 널려 있는 곳이다.

예를 들면 지금 신안군에서 계획하는 환기테마파크만 해도 화가의 작품 보유량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신안만이 가지고 있는 화가의 생애와 관련된 아우라를 많이 풍겨줄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이 다녔던 옛날 초등학교와 작업실, 그리고 조석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먼 미지의 나라를 꿈꾸었던 행보의 자취 등을 많이 발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작품의 부족을 예술가와 관련된 독특한 지역의 에스프리로 메꿀 수 있을 것이며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하여 오히려 원작보다도 더 크고 다양한 감상의 기회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안군 압해읍의 가칭 바다미술관만 하더라도 그 전망이며 주변 아름다움만으로 세계적일 수 있는 환경적 이점이 있고, 그 일대 빛의 언덕과 기독교 성지들만 잘 개발하여도 놀라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청정하고 아름다운 이런 섬들의 이야기 자원을 묶어내어 문학작품으로, 영화로, 뮤지컬로 풀어낸다면 1000개의 섬으로 유명한 미국의 시러큐스에 버금가는 제2의 시러큐스, 제2의 나오시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산천이 아기자기하고 이런 식의 이야기 자원이 유독 많은 나라다. 민담과 설화뿐 아니라 현대적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발굴한다면 한국적 해리포터와 같은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이야기 자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쟁력 있는 곳일수록 문화특구로 만들어 재정 지원은 물론이고 각종 제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제2, 제3의 한류(韓流) 자원이 개발되지 않는 한 역으로 중국의 한류(漢流)나 일류(日流)가 압도해올 수도 있을 것이다. 발길에 차이는 것마다 전통이요, 역사의 소재라고 할 만한 중국 영화가 이미 세계 영화계의 본류에 진입한 지 오래이며 문학작품이나 패션이 선도하는 일류(日流) 또한 한류(漢流)와는 또 다른 위협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이 발간될 때마다 한국출판시장이 요동을 치고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나 요지 야마모토 또한 그 분야의 세계시장을 출렁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은 문화예술 지원에서도 적용된다. 특히 문화적 경쟁력이 될 만한 지자체를 집중 지원하는 일은 한국의 새로운 대표 브랜드 창출로 이어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김병종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