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대학 때는 누구나 조금은 우울하다.
영화 속 승민과 서연처럼, 늘 지내던 동네에서 벗어나 마주한 큰 세상에 압도당한다. 아이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정체성이 모호한 데다 이상한 열등감이 생기기도 한다.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가 사라지고 허무감이 몰려온다.
치료를 요하는 임상적 우울증이 아닌, 대학생 때 많이들 겪는 가벼운 우울감이라는 생각이 들면 책 읽기를 권할 때가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십중팔구 ‘어떤 책을 읽을까요?’라고 물어 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서점에 가서 마음이 끌리는 책을 읽으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 책이 본인이 지금 필요로 하는 책이자 간접 경험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해 준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할 때는 “고전을 읽어 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의 마음과 공명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추천해 달라고 할 때는 아래의 책들을 추천해 주곤 한다.
우선 빅토르 프랑클(1905∼1997)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프랑클은 유대인 신경정신과 의사였는데, 나치 치하에서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함께 갇힌 아버지, 어머니, 아내 모두 그곳에서 죽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가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에는 극도의 고통스러운 경험 가운데서 찾아가는 삶의 의미가 스며들어 있다.
다음으로 C S 루이스(1898∼1963)가 쓴 ‘고통의 문제’와 ‘헤아려 본 슬픔’을 추천한다. 케임브리지대의 문학 교수였던 작가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폭력적인 남편과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던 조이라는 여성을 만난다. 조이가 이혼한 후 루이스는 늦은 나이에 사랑을 하게 되는데 이때 조이는 불치의 암 진단을 받는다.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병상 옆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3년 동안 행복한 삶을 맛본다. 영화 ‘섀도우 랜드’는 그의 드라마틱한 삶을 회고한 영화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의 경험에 대한 책도 있다. 고 박완서 작가의 ‘한 말씀만 하소서’나 어느 날 사랑하는 엄마를 잃은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샤를로트 문드리크의 그림책 ‘무릎딱지’가 대표적이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할 때 치유가 되는 책을 찾는다면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권하고 싶다. 작가는 현대인이 느끼는 각종 불안과 우울의 근원을 사랑 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에서 찾으며 재치 있게 해부하고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내가 왜 불안할까’를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치유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책을 통해 우울증을 호전시키고자 하는 방법을 이미 정신건강의학계에서는 ‘책 치료(bibliotherapy)’라고 부른다. 사실 책 치료의 효과는 연구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플라세보 효과(위약 효과·가짜 약을 진짜라고 믿고 복용한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는 효과)를 완전히 배제하기가 어렵고, 피험자가 이미 어떤 다른 치료로 효과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은 참으로 현명하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책은 그저 마음의 양식이 아니다. 우리 마음을 치료해 주고 어루만져 주는 치료사다.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