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여윳돈 생기면 서까래 세우고… 농사 잘되면 지붕 얹고… 11년째 뚜벅뚜벅 ‘한옥교회 짓기’

입력 | 2013-05-14 03:00:00

■ 농부목사 정훈영의 천안 단비교회



2층 한옥으로 짓고 있는 단비교회 앞에서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이애경 씨(왼쪽)와 정훈영 목사 부부. 지난 20여 년간 이들은 동네 사람들의 이웃으로 살아왔다. 무언가를 바꾸기보다는 땅속에 기꺼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단비 같은 삶이었다. 천안=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예배 공간으로 사용되는 한옥교회의 내부.

“축사(畜舍)를 고쳐 교회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보기 딱했어요.”(서울女)

“유학 가면 뭐 합니까. 좋은 남편 만나 결혼하는 게 최고죠.”(충청男)

“농사야 (그러리라) 예측했는데, 공사를 10년 넘게 할 줄이야….”(서울女)

“그때는 한 3년 공사하면 끝날 줄 알았죠.”(충청男)

자동차로 충남 천안군 목천 나들목을 빠져나와 10여 분 가자 어사 박문수의 묘가 있다는 야트막한 은석산이 나왔다. 2km 남짓 이어지는 벚꽃 터널 옆으로 병천천이 졸졸 흐른다. 반대편 야산으로 방향을 틀자 ‘단비교회’ 표지석이 나왔다. 기와를 색색으로 물들인 2층 한옥교회다. 교회라는데, 십자가도 없다.

1992년 8월 9일로 돌아가자. 서울 여자와 충청 남자는 이 ‘교회 같지 않은 교회’에서 무슨 일을 시작한 걸까. 그날 교회라기보다는 축사에 가까웠던 교회에서 창립 예배가 열렸다. 참석자는 당시 스물일곱 동갑내기 정훈영 목사(48)와 여자 동창생, 그리고 서울에서 온 동창생의 친구 이애경 씨였다.

미술 유학을 꿈꾸던 이 씨는 첫 예배 뒤 이 교회를 이따금 찾았다. 그냥 두면 ‘사람 하나 잡겠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아니면 누추하지만 가슴을 가득 채우는 마음의 평안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1993년 11월 13일 이 교회에서 정 목사와 이 씨가 결혼했다. 지금도 논과 밭 합쳐 1만6500여 m²의 농사를 짓고 있지만 남편은 목사라기보다는 농부에 가까웠다. 이 씨 역시 도시의 고상한 ‘목사 사모님’보다는 농사일 거들고, 새참 나르는 촌부가 됐다.

부부가 시골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축사 교회가 들어서 있던 땅 주인이 땅을 매물로 내놔 교회도 허물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 그때 정 목사가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아니, 그때까지는 어느 정도일 줄 알 수 없었다. 빚을 내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땅을 사들인 뒤 2002년 교회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건축은 몇 개월에 뚝딱 한 채 짓는 그런 식이 아니었다. 황토 다루는 일과 목수 일을 손수 배운 정 목사가 어쩌다 여윳돈 생기면 서까래 하나 세우고, 농사 잘되면 지붕 얹는 식이었다. 충청도 고집의 소걸음(牛步)이었다.

“교회가 농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죠. 정신뿐 아니라 모양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 결론은 한옥교회였어요.”(정 목사)

“상의는 했다지만 사실 통보였죠. 나무값에 인건비는? 이런저런 계산이 없어요.”(이 씨)

공사 시작한 지 9년 만인 2011년 10월 입당 예배를 가졌다. 100여 평 한옥에 알록달록 가을단풍 닮은 기와를 얹었다. 그사이 예배는 비닐하우스, 살림은 세 아이와 컨테이너에서 해결했다. 4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낸 이 씨 시어머니도 가족의 간병을 받다 세상을 떴다.

단비교회의 공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다락방 창틀과 미장, 한쪽 공간을 지역 주민을 위한 도서관으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얼마 전 출간한 책 ‘단비교회 이야기’ 표지에 실린 지붕은 철 이른 단풍처럼 고왔다.

이들에게 짧지 않은 20여 년은 어떤 의미일까. “집은 사람을 닮는다고 하죠. 교회는 우리 부부뿐 아니라 동네사람 모두 함께 짓고 있는 겁니다. 이 공간이 자연과 어우러진 회복의 단비가 되기를 바랍니다.”(정 목사) “목회자에 일꾼, 농사꾼까지 세 사람과 결혼한 셈이죠, 호호.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도 느린 사람은 못 이기는 것 같아요.”(이 씨)

천안=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