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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마천루에서의 낙하… 언젠가 꿈에서 본듯

입력 | 2013-05-14 03:00:00

2013년 5월 13일 맑음. 꿈에. #57 Vampire Weekend ‘Ya Hey’(2013년)




이렇게 환한 날엔 햇살과 함께 아스팔트 위로 부서져 내리고 싶다. 남태평양 위라면 더 좋겠다. 다른 말로 하면, 일하기, 싫다.

지난 주말, 다섯 번의 꿈을 꿨다. 두 번은 잘 때, 세 번은 깨어 있을 때 그랬다.

영국의 3인조 컬트 밴드 타이거 릴리스는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를 남태평양을 떠도는 유령선으로 만들었다. 18세기 말 영국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시 ‘늙은 뱃사람의 노래’를 멀티미디어로 재해석했다. 테레민, 톱, 아코디언, 피아노, 각종 타악기, 카운터테너 가창을 오가며 이들이 만드는 음악은 무대 앞뒤로 투사되는 3차원 영상과 맞물려 때로 뱃멀미처럼 아득하게 현실의 육지에서 객석을 떼어놨다. 극 중 뱃사람은 남풍을 상징하는 행운의 새 앨버트로스를 석궁으로 쏴 떨어뜨리고 배에는 저주가 깃든다.

두 번째 꿈은 ‘로마 위드 러브’라는 영화였다. 로망(프랑스어로는 ‘소설’)과 로맨틱의 어원이 된 장소를 배경으로 한 만큼 우디 앨런은 매우 현실적이지 않은 에피소드를 잔뜩 풀어놨다.

세 번째 꿈은 12일 오후 ‘장기하와 얼굴들’과 미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텔레비전의 합동 공연이었다. 리더 톰 벌레인과 텔레비전 멤버들은 신경을 긁어내린 듯한 날카로운 음향과 긴 즉흥 연주로 청각적 몽환을 만들어냈다. 특히 21년 만의 새 앨범에 담길 신곡 ‘더 시’와 ‘퍼셔(Persia)’의 긴 연주가 그랬다.

꿈 하나가 더 있었네. 뱀파이어 위크엔드가 최근 낸 3집 ‘모던 뱀파이어스 오브 더 시티’는 미국 뉴욕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단시간에 평단의 호평을 휩쓴 밴드의 야심에 찬 새 꿈이었다. 팀의 작곡자인 에즈라 코에니그는 유대인, 로스탐 바트망글리는 이란계 미국인이다. ‘야 헤이(Ya Hey)’가 ‘야훼(Yahweh·이스라엘인들이 하느님을 부르던 고유 명사)’로 읽힌다는 평이 벌써 나온다. 뉴욕을 배경으로 찍은 뮤직비디오에는 뱀파이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앨버트로스도 없고 추락도 실족도 없다. 근데 그 흑백의 영상은 언젠가 꿈에서 본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마천루에서의 낙하.

(…키가 크려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