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보행자가 눈 마주보면 길 건넌다는 신호… 양보운전 해야”
운전을 하다 보면 길 건너는 어린이와 매일 마주치겠죠? 많은 어른 운전자는 무심하게 창밖을 보거나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며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어린이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사고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초롱초롱 빛나는 어린이의 눈은 마치 ‘멈춰주세요’라고 말하는 신호등 불빛과 닮았습니다. 어린이와 눈을 마주쳐 주세요. 그 짧은 배려 덕분에 당신은 ‘참 좋은 운전자’로 기억될 겁니다.
본보 취재팀은 8일 서울 양천구 목동, 마포구 아현동, 강남구 대치동 일대 초등학교 주변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을 관찰했다. 세 지역 모두 비슷한 점이 보였다. 신호등을 건너기 전에는 마치 100m 경주 출발선에 선 것처럼 주먹을 쥐고 달리기 자세를 취한다는 점이다. 마치 누가 먼저 길을 건너는지 시합이라도 하듯이 초록불로 바뀌기가 무섭게 튀어 나가는 장면이 모두 관찰됐다. 어린이보호구역이라 차량들은 서행했지만 어린이들의 이 같은 행동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 도로에서처럼 정지선을 넘거나 횡단보도를 침범하는 차량이 쉽게 발견됐다. 또 다른 대형 사고를 불러올 수 있는 위험한 장면이었다.
위험한 장면은 속출했지만 어른의 배려는 찾기 힘들었다. 초록불이 점멸할 때 길을 건너기 시작해 도중에 빨간불로 바뀌면 어른 운전자는 대부분 ‘빵!’ 하고 긴 경적을 울려 아이를 놀라게 했다. 어린이도 ‘일상적’이라는 듯, 힐끗 돌아보고는 태연하게 길을 건넜다.
본보 취재팀은 최근 유튜브 등에 올라온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 블랙박스 영상 15개를 분석했다. 15개 중 12개 영상에는 어린이가 차에 치이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나머지 3개 영상은 가까스로 사고를 모면한 내용이었다.
어린이가 뛰어나오는 장면이 잡힌 영상은 10개였다. 아이가 일반적인 걸음으로 길을 건너다 발생한 사고는 5건에 불과했다. 횡단보도를 뛰어 가로지르다 신호위반 버스에 부딪혀 튕겨나가거나 불법 주정차 된 차량 사이에서 갑자기 뛰어나와 차에 치이는 장면도 있었다.
취재팀이 분석한 영상에서 어린이가 차와 가까워지는 순간 아이가 운전자를 바라보는 장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걷거나 뛰거나 하는 차이는 있었지만 영상에 잡힌 사고 어린이들은 길을 건너는 내내 모두 일관되게 정면만 쳐다봤다.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운전자뿐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눈 마주치기’, ‘길 건너기 전 좌우로 고개 돌려 차량 확인하기’ 등의 교육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현재 도로교통공단이 각 초등학교를 돌며 진행하는 어린이 교통안전 교실에서도 ‘길 건너는 법’을 자세히 가르친다. 11년 넘게 수업을 진행한 김미경 강사는 “아이들에게 길을 건너기 전 좌우로 차량이 오는지 살피는 것은 물론이고 운전자와 눈을 마주치라고 가르치지만 금세 잊는 편”이라며 “습관이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2개 학급이 한자리에 모여 45분간 강의를 듣지만 그나마도 의무가 아니다 보니 이 같은 안전교육을 하지 않는 학교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특히 어린이보호구역이나 주택가 주변 등 어린이가 자주 다니는 곳에서는 반드시 운전자가 어린이와 눈을 마주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눈 마주치기’가 선진국 운전자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다.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통안전 교육 과정에도 포함돼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교통부(MTO)와 차량국(DOT)에서 운전자를 위한 공식 교육 책자를 발간한다. 여기에는 “운전자는 앞에 보행자가 있을 땐 반드시 얼굴을 쳐다보고 눈을 마주쳐야 한다”며 “보행자가 운전자를 바라보고 눈을 마주치면 길을 건널 준비가 됐다는 뜻이니 양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길을 건너는 어린이들에게도 똑같은 내용을 교육한다.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길을 건널 땐 운전자와 눈을 마주쳐라”고 안전교육을 받는다. 또 교육을 이수하면 일명 ‘보행자 면허증’을 발급해 준다. 혼자 도로를 걸을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는 의미에서다.
우리 사회에는 어린이와 운전자 교육이 강화된 이런 시스템이 언제 갖춰질 것인가.
이은택·조건희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