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엘 등 獨통일 전 600건 임상시험… 위험 설명 안해 사망자 다수 발생외화 급했던 동독정부-병원 묵인
독일 스위스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들이 독일 통일 전까지 동독의 병원에서 약 5만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개발 중인 신약의 불법적인 임상시험을 실시했으며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12일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독일 바이엘 셰링 획스트, 스위스 로체와 산도스 등은 1989년까지 동독 국립병원 50여 곳에서 600건의 의약품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대가로 건당 80만 마르크(약 5억7700만 원)가 사례비로 건네졌다.
현재 바이엘에 흡수 합병된 셰링사는 한 동독 병원에 일련의 실험을 위해 300만 유로를 지불했다. 셰링이 개발 중이던 피부암 치료제 실험대상이 됐다가 1986년 숨진 30세 여성의 딸 니콜 프라이스는 “엄마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이 너무 많다. 어떤 약과 제약회사가 죽음에 연관됐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제약회사 사노피에 합병된 독일 획스트의 혈액 순환 개선제 ‘트렌탈’의 실험 과정에서도 환자 두 명이 사망했다. 바이엘사는 뇌의 혈류 흐름 개선제인 니포디핀을 정신질환을 앓는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실험했다. 로체는 미숙아들을 대상으로 ‘블러드 부스터’라는 약도 실험했다. 지금은 스위스 노바티스로 넘어간 산도스가 폐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혈압 약 실험에서는 두 명의 환자가 숨졌다.
서방 제약사들은 1960년대 ‘탈리도미드 스캔들’ 이후 엄격해진 신약 판매 전의 임상시험 규정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돈이 부족한 동구권 국가들을 이용한 것이라고 잡지는 보도했다. 수면제로 개발된 탈리도미드는 충분한 사전 검증 없이 판매돼 수많은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됐다.
슈피겔은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의 비밀파일과 동독 보건부의 미발표 문서에서 자료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약회사들은 “실험은 오래전 있었으며 원칙적으로 의약품 실험의 엄격한 규정을 항상 지켰다”며 “어떤 불법이 행해졌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다”고 반박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