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 순방인 만큼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 시기엔 부처 공무원들에게 일을 시키면 대부분 알아서 길 정도다. 윤창중 사태는 이런 ‘정치적 흥분 상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스캔들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새 정부 들어 처음 대통령 전용기도 타고 말로만 듣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봤으니 벼락출세한 기분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정치권에선 이번 성추행 의혹 사건의 원인을 놓고 1차적으론 윤 전 대변인 개인의 문제이지만 그 외에도 임기 초 ‘슈퍼 갑(甲) 완장’ 심리가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이전엔 공직을 경험하지 못한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이 같은 심리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온다. 친박(친박근혜)계 어공들 사이에선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에 이명박 정권 5년까지 합쳐 15년 만에 정권을 잡았다’는 말이 얼마 전까지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미국 순방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 등 역대 최대 규모인 52명의 경제인이 수행해 직원들의 자부심은 절정에 이르렀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임기 초에 처음 접하는 권력의 달콤함은 곳곳에 녹아 있다. 대통령 전용기는 좌석이 넓어 선임행정관급 이상은 일반 항공기의 비즈니스석에 준하는 좌석을 탈 수 있다. 외국에 도착해도 별도의 보안 검사 없이 공항을 나설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윤창중 사태를 계기로 청와대 직원들이 스스로 ‘임기 초 완장 심리’를 제어하지 않으면 ‘제2의 윤창중 사태’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임기 첫해에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 보니 임기 5년은 금방 간다”며 “완장이 평생 가는 게 아닌 만큼 지금부터 자중해야 실패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반부패정책학회장인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청와대 직원들이 직무 기강 확립을 넘어 도덕적 재무장을 할 필요가 있다”며 “유사한 참사가 재발하면 국민들이 그들의 팔에 찬 ‘청와대 완장’은 물론이고 박근혜정부 자체를 흔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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