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빌딩… 튀지 않는 단아한 자태어반하이브… 튀려는 욕망 영리한 표출
김중업(1922∼1988)이 설계한 삼일빌딩(1970년). 뉴욕의 시그램 빌딩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건축가 최준석은 “땅으로부터 표출되는 건축물 고유의 비례는 베낄 수 없다”고 평가했다. 원대연 기자
김중업 씨
삼일빌딩은 짝이 되었던 삼일, 청계고가를 잃고 어설프게 복원된 청계천의 한 옆에 초로의 노인처럼 서 있다. 그 모습은 ‘위용’보다는 ‘자태’라는 말이 적합할 듯하다. 단순한 반복의 미학, 폭과 높이의 적절한 비례감, 올바른 재료의 선택 등이 그 자태를 이룬다. ‘31층의 높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보를 뚫고 닥트를 배열하여 날씬하게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김중업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 가상한 노력과 고민이 배어 있는 건물이다. 지은 지 40년이 넘어서인지 모든 것이 노후화했지만 그 우아한 자태만큼은 여전하다.
김인철(66)이 설계한 어반하이브(2008년). 건물 외벽에 3800개가 넘는 구멍을 뚫어 놓았다. 건물 내부에서는 동그란 구멍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는 색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사진작가 박영채 씨
김인철 씨
구멍이 숭숭 뚫린 어반하이브의 외관은 그저 튀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건물을 지탱해주는 구조적 역할을 담당해 형태에 진정성을 더해준다. 배타적이고 방어적인 모습으로 거대 자본의 공룡성을 보여주는 것이 교보타워라면 어반하이브는 ‘콘셉트’ 있는 접근으로 영리하게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어반하이브는 한국 최고의 현대 건축물로 평가받은 반면 교보타워는 목록에 오르지 못했다.
외국 스타 건축가와 국내 건축가를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도달점은 아니다. 단지 최고 건축의 반열에 오른 건물과 훨씬 더 많은 자본의 혜택을 입었으나 그렇지 못한 건물 사이에 존재하는 질적 간극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를 묻고 싶을 뿐이다.
삼일빌딩이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는 튀지 않는 단아한 모습으로도 존재가 충분히 각인될 수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업무시설의 현대적 원형으로 뉴욕의 시그램 빌딩을 꼽는데 삼일빌딩은 그 원형을 충실히 서울에 이식시켰다. 혹자는 표절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삼일빌딩은 시그램 빌딩의 외관을 베낀 것이 아니다. ‘도시와 관계를 맺는 형식에 천착한다’는 시그램 빌딩의 윤리를 존중하고 실행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삼일빌딩과 한 세대의 시간차를 두고 세워진 어반하이브는 고층 업무시설로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튀려는 자본의 욕망과 윤리적이려는 건축가의 의지가 몇 가지 현명한 건축적 장치에 의해 절묘하게 한 몸이 된 듯하다. 현대 사회에서 튀려는 욕망을 억누르기만 할 수는 없는 법, 그 시대의 욕망을 영리하게 표출하는 지혜 또한 한 세대 이전과는 다른 윤리 아닐까.
삼일빌딩은 리모델링이 필요해 보인다. 리모델링이 삼일빌딩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 서소문에 붉은색 커튼월로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던 옛 효성빌딩이 하루아침에 리모델링의 이름하에 무참히 짓밟힌 것을 잊지 않는다. 시그램 빌딩의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의 제자 김종성이 설계한 건물이었다.
손진 이손건축사사무소 소장
[바로잡습니다]
◇15일자 A22면 ‘한국의 현대건축 BEST&WORST <7> 좋은 빌딩 전형을 보여주는 12위 삼일빌딩, 13위 어반하이브’ 기사에서 삼일빌딩을 설계한 건축가 고 김중업 씨의 사진 대신 건축가 고 김수근 씨의 사진이 게재됐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