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환 41주년 날, 현지 지식인들 ‘민족독립 연구학회’ 출범
15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마쓰시마 야스카쓰(松島泰勝·50) 류코쿠대 교수 등이 주도하는 ‘류큐 민족독립 종합연구학회’라는 단체가 이날 오키나와에서 발족했다. 15일은 오키나와가 1952년 4월 28일에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미국령이 됐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된 지 꼭 41주년이 되는 날이다.
새로 결성된 학회는 주민투표로 과반수 찬성을 얻어 독립을 선언하고 유엔에도 가맹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엔헌장과 국제인권규약이 인민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데다 팔레스타인이 지난해 11월 ‘옵서버 조직’에서 ‘옵서버 국가’로 격상된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유엔 ‘탈식민지화 특별위원회’가 탈(脫)식민지화를 추진하는 ‘비(非)자치령’ 명단에도 류큐를 등록시킬 방침이다. 다만 학회는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는 경계감을 나타내고 있다.
오키나와 독립 주장은 최근 부쩍 잦아지고 있다. 오키나와가 지역구인 데루야 간토쿠(照屋寬德·67) 사민당 의원은 지난달 1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오키나와, 드디어 야마토(일본 본토의 옛 이름)에서 독립’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오키나와가 이렇게 차별을 받느니 일본에서 독립하는 게 낫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키나와 스터디즈 107’처럼 류큐 민족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는 단체도 있다.
하지만 오키나와 주민 중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은 소수다. 2007년 오키나와 현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독립에 찬성하는 의견은 20.6%, 지난해 조사에서는 1%였다. 다만 향후 미군기지 이전 갈등 과정에서 오키나와의 자치 확대를 요구하는 주장은 커질 수 있다.
오키나와는 원래 독립된 류큐 왕국으로 1879년 오키나와 현으로 일본에 강제 편입됐다. 일본은 이후 강압적인 식민지 정책을 시행해 언어와 두발, 풍속과 생활관습까지 철저히 일본화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종전 교섭을 앞두고 본토를 지키고 일왕을 보호할 시간을 벌기 위해 오키나와를 방패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주민에게 집단 자결을 강요하고 학살하는 등 잔학 행위를 저질러 섬 인구의 4분의 1가량인 12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은 또 한 번 오키나와를 버렸다. 도쿄 전범재판이 진행되던 1947년 9월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자신의 전쟁 책임을 면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미군에 장기 조차 형식으로 넘기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로 인해 히로히토 일왕은 1989년 죽을 때까지 오키나와 땅을 밟지 못했다. 1975년 현재의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왕세자 신분으로 오키나와를 찾자 이에 항의한 오키나와인이 분신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도쿄=배극인·베이징=고기정 특파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