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포획 돌고래 몰수 판결, 그후 51일
불법 포획된 뒤 대법원의 몰수형 선고로 ‘자유의 몸’이 된 돌고래 4마리 중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진 태산이와 복순이. 9일 서울대공원에서 만난 이들 돌고래는 건강이 좋지 않아 사육사(왼쪽)와 현대그린푸드 김지환 대리가 주는 생선도 잘 먹지 않고 있었다. 과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번 판결은 국내에선 전례를 찾기 힘든 생명체에 대한 몰수형이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문제는 ‘전례가 없다’는 것에서 시작됐다. 4마리 돌고래의 ‘자유’를 위해 바다로 돌려보낼 책임 주체나 예산에 관한 법적 근거가 전혀 없었던 것. 전례가 없다는 것은 결국 국가의 어떤 기관도 이 일을 맡을 책임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50여 일이 지난 지금, 4마리의 돌고래는 어떻게 됐을까.
시민단체에 예산 떠넘긴 정부
돌고래 4마리의 몰수형이 대법원 판결로 확정되기 전인 지난해 말 ‘제돌이 야생방사를 위한 시민위원회’에서 돌고래 4마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가 시작됐다. 시민위원회는 몰수된 돌고래 4마리와 불법 포획돼 서울대공원에 온 돌고래 ‘제돌이’를 함께 방사하기 위해 서울시가 만든 조직이다. 시민위 회의에서 ‘제돌이 한 마리를 방사하는 것보다 다른 돌고래와 무리를 지어 방사하는 게 자연 생존 확률이 더 높다’는 주장(김현우 고래연구소 박사)이 나오며 동물보호시민단체와 전문가 등 대다수의 시민위원이 함께 방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서울대공원은 “제돌이 방사 예산을 나눠 쓸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시민위원장이었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등이 “돈은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서울대공원은 돌고래 4마리를 맡겠다고 했다.
이와 별도로 이번 재판을 진행했던 제주지검도 대법원 판결 전 고민에 빠졌다. 몰수판결이 난 재산에 대한 처분권은 검찰이 갖기 때문이었다. 원심이 뒤바뀔 가능성은 희박했기 때문에 검찰은 올 초 당시 주무부처였던 국토해양부 해양생태과에 돌고래의 향후 처리방안을 문의했다. 국토부 역시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국토부는 1월에 부산에서 서울대공원, 울산 고래해양체험관 등 관계기관을 불러 돌고래를 어떻게 처리할지 대책회의를 했다.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국토부 관계자는 “몰수품 처리는 사법기관의 책임”이라며 “다만 보호대상 해양생물이기 때문에 도의적으로 국토부가 돌고래 4마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회의에서 국토부가 제안한 안은 자연 방사가 가능한 돌고래는 서울대공원에서 맡아 방사가 예정된 ‘제돌이’와 함께 자연으로 보내고 그렇지 못한 돌고래는 울산 고래해양체험관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울대공원과 고래해양체험관 측 모두 돌고래 4마리를 자신들이 관리하겠다고 해 결론이 나지 않았다.
불법 포획된 뒤 대법원의 몰수형 선고로 ‘자유의 몸’이 된 돌고래 4마리 중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진 태산이와 복순이. 9일 서울대공원에서 만난 이들 돌고래는 건강이 좋지 않아 사육사(왼쪽)와 현대그린푸드 김지환 대리가 주는 생선도 잘 먹지 않고 있었다. 과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대법원 판결 열흘 뒤인 4월 8일 돌고래 4마리 중 몸 상태가 비교적 좋았던 춘삼이와 삼팔이 두 마리는 제주 퍼시픽랜드에서 무진동 차량을 이용해 제주 성산포 가두리로 옮겨졌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태산이와 복순이는 아시아나항공의 도움으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서 서울대공원으로 왔다. 최 교수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설명을 하고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흔쾌히 도와주셨다”고 설명했다. 당장 필요한 돌고래 4마리의 먹이와 이동비용은 동물자유연대가 마련한 1300만 원으로 우선 해결했다.
5월부터는 식품기업인 현대그린푸드가 제주 성산포와 서울대공원에 머무는 돌고래들의 먹이를 책임지고 있다. 9일 서울대공원 수족관에서 만난 현대그린푸드 김지환 대리는 “최재천 교수가 회사 특강에 와서 돌고래 4마리 이야기를 하면서 ‘급식 업체이니 우리 돌고래 급식 좀 해 달라’고 제안해 인연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그린푸드 측은 아직 활어를 먹지 못하는 태산이와 복순이를 위해 사료용 냉동 고등어를 공급하고 있다. 김 대리는 “급히 먹이를 구하느라 힘들었다. 다행히 올 연말까지 먹을 고등어 4t을 구매해 냉동창고에 비축해 놨다”며 “성산포에 있는 돌고래 2마리에겐 매일 활어를 구입해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현대그린푸드가 올해 돌고래 4마리 먹이에 책정한 비용은 5000만 원. 최 교수는 “기업의 도움이 없었다면 시민단체들이 이 모든 비용을 책임져야 했을 텐데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동물자유연대 조 대표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시민단체가 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우리가 돈을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국가가 몰수한 것을 시민단체 모금으로 먹이고 방류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산·복순이는 바다로 갈 수 있을까
11일 서울대공원에서 머물던 제돌이는 비행기편으로 제주 성산항으로 가 춘삼이 삼팔이가 머물고 있던 가두리에 합류했다. 성산항 가두리는 춘삼이 삼팔이의 사정을 들은 한국어류연구소 측이 무상으로 마련해준 곳이다.
가두리에서 야생적응훈련을 하고 있던 춘삼이와 삼팔이는 제돌이가 들어오자 처음에는 낯을 가렸지만 이내 함께 짝을 이뤄 유영을 했다. 셋은 다음 달 초 구좌읍 김녕리 앞바다 가두리로 옮겨진다. 돌고래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어서 방사 후보지로 선정된 곳이다. 야생적응훈련을 거쳐 7월 중 방사될 계획이다. 하지만 야생에서 제대로 적응하는지 모니터링하기 위해 등지느러미에 위성 위치추적기를 단 제돌이와 달리 춘삼이와 삼팔이는 아직 위치추적기를 달지 못했다. 2마리에 1100만 원이나 들어가는 비용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위치추적기를 달지 않으면 제대로 야생에서 적응을 하고 있는지 모니터링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몸 상태가 좋아 방사가 결정된 춘삼이 삼팔이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태산이와 복순이는 언제쯤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갈지 기약이 없다.
9일 서울대공원 수족관에서 만난 태산이와 복순이는 자신들의 어두운 미래를 걱정하는 듯 물 위에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멍 하니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복순이는 아래턱이 비뚤어져 있는 선천적 기형을, 태산이는 윗주둥이가 5cm가량 잘린 장애를 갖고 있다. 사육사 박창희 씨는 “하루 다섯 번 정도 먹이를 주는데 다른 애들에 비해 둘은 반 정도밖에 먹이를 먹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두 마리는 퍼시픽랜드에서 머물 때에도 성격이 예민해 조련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박 사육사는 “사회성이 좋고 호기심이 많은 다른 돌고래와 달리 사람과 전혀 마음을 나눌 생각이 없다. 예민하고 겁이 많아 살아있는 먹이를 주면 오히려 놀라 도망갈 정도”라고 덧붙였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잡아먹지 못하면 자연방사가 불가능하다.
최 교수와 시민단체는 두 마리의 몸 상태뿐 아니라 앞으로 감당해야 할 둘의 방사비용 때문에 걱정이 많다. 춘삼이와 삼팔이는 다행히 제돌이 방류와 시기가 맞아 함께 방사하게 됐지만 태산이와 복순이가 건강을 회복해 방사를 하려면 또다시 수억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방사 전까지 사육비용과 제주도로 이송하는 비용, 위치추적기 구입비용 등을 포함한 것이다. 제돌이 1마리를 방사하는 데 쓰는 돈은 모두 7억5000만 원이다.
최 교수와 동물자유연대 등 시민단체는 지금도 돌고래 4마리의 방류와 그 이후 관리에 드는 비용 마련을 위해 모금운동과 함께 기업체 후원을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기업 후원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제돌이와 춘삼이, 삼팔이가 방사되고 난 뒤에도 돌고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이어질 수 있을까.
최 교수는 “국가 역시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예산을 책정할 수는 없었을 거다. 국가를 매도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앞으로 부담해야 할 예산만이라도 어떻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해수부는 내년도에 관련 예산을 책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지만 편성될지는 미지수다. 해수부에서 예산이 편성되면 태산이 복순이의 방사 비용의 일부를 해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시민단체가 고스란히 책임져야 한다. 해수부 관계자는 “2010년부터 보호대상 해양생물을 보존하거나 구조·치료하기 위해 서식지외 보존기관 및 치료기관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며 “서울대공원 등 6곳이 지정돼 있는데 내년도에 이들 기관에 대해 예산을 지원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돌고래 4마리의 몰수형은 ‘동물복지’ 측면에서 볼 때 분명 진일보한 판결이다. 하지만 돌고래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험난하다. 국가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박진우 기자·제주=임재영 기자 pj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