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고 울며 배운 운동… 운명처럼 ‘父女공감’ 끈이 되었다
이찬 관장과 이가인 사범이 자택 정원에서 부채를 이용한 투로를 선보이고 있다. 이 씨 부녀는 서울 서초구에서 함께 태극권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낮은 목소리가 문 밖에서 집으로 흘러들었다. 여섯 살 꼬마 소녀는 토끼눈을 하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막 방바닥에 누워 인형놀이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봤다. 현관문 유리 너머로 두 개의 큰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또 그들이다.
소녀는 숨을 곳부터 찾았다. 좁은 집 구석구석을 살폈다. 장롱이 눈에 보였다. 장롱에 들어가 문만 닫고 있으면 아무도 못 찾겠지. 인형을 방바닥에 던져 놓은 채 장롱으로 달려 들어갔다. 안에서 장롱 문을 닫는데 그 소리가 불안할 만큼 크게 들렸다.
다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집 안에서 나고 있었다. 소녀는 숨소리를 죽였다. 장롱 틈 새로 두 명의 남자 그림자가 보였다. 그들은 어느새 소녀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 소리가 북 소리 같았다.
그때였다. 벌컥 장롱 문이 열리고 솥뚜껑 같은 손이 소녀의 몸을 낚아챘다. 장롱에서 그녀를 꺼낸 남자는 다른 남자의 등에 소녀를 얹었다. 소녀는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나 가기 싫어! 나 오늘은 인형놀이 할 거야! 엉엉엉. 가기 싫다고. 놔줘!”
남자 둘은 소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체육관의 사범이었다. 소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껄껄 웃기 바빴다. “꼬마 아가씨, 오늘은 운동 해야지. 너 안 데리고 가면 우리가 관장님한테 혼나.”
이찬 관장이 관원들의 자세를 수정해주고 있다. 이 관장은 국내 태극권계의 일인자로 꼽힌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뒤에 있는 다리에 힘 잘 주셔야 해요. 손끝 모양 신경 써주시고요.”
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건물 지하. 조용하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채와 목검이 열을 맞춰 놓인 그곳에 태극권 대가 이찬 관장(58)이 있었다.
이 관장은 관원의 투로(태권도의 품새)를 하나하나 가다듬고 있었다. 얼핏 보면 관원들이 가만히 서서 손을 가슴 높이로 올리고 있는 단순한 자세 같다. 그러나 이 관장은 그들의 자세를 몇 번이고 고치고 또 고쳤다.
그는 이찬 관장의 둘째 딸이자 도장의 사범인 이가인 씨(28)다. 운동하러 가기 싫어 떼를 쓰며 울던 소녀는 훌쩍 자라 아버지가 운영하는 도장의 사범이 돼 있었다.
“운명인 것 같아요. 그렇게 피하려고 했는데. 결국에는 운동이 직업이 됐네요.” 이 씨가 아버지를 도와 관원의 투로를 수정하다가 웃으며 말을 꺼냈다.
운동하는 아버지 때문에 가인 씨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접했다. 아버지가 소림권에 빠져 있을 때는 소림권을, 태극권을 공부할 때는 태극권을 따라했다.
관심도 많았다. 영화는 의천도룡기 등 무협영화만 찾았다. 만화책도 ‘란마’ 등 쿵후를 주제로 한 것만 골라 봤다. 어릴 적 그의 아이돌은 중국 배우 ‘이연걸(李連杰·리롄제)’이었다.
아버지도 이런 딸이 기특하고 예뻤다. 매일 도장에 데리고 다니며 함께 운동을 했다. 그러나 무술에 대한 소녀의 호기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도장에 제 또래의 친구가 없어 늘 혼자 운동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미없어졌다.
도장에 나가지 않으려 집 안 곳곳에 몸을 숨겨봤다. 장롱, 문 뒤 등에 숨어봤지만 번번이 사범의 손에 잡혔다. 아버지는 운동을 빠질 때만큼은 가인 씨에게 불호령을 내렸다. 그럴수록 도장에 나가기 싫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지금은 표정이나 눈매가 되게 부드러워지셨는데 옛날에 소림권을 하실 때만 해도 굉장히 무서웠어요. 운동이 싫다고 할 때마다 10분 동안 기마자세로 있기, 손들고 서 있기 등 벌을 세우셨죠. 차라리 맞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만큼 힘들었어요.”
결국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가인 씨는 운동을 그만둔다. 아버지의 마음에도 구멍이 생겼다. 이찬 관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대를 이어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아들이 없으니 딸이라도 어려서부터 시키자는 마음이 컸죠. 그런데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아쉽지만 뭐 별 수 있나요. 그냥 혼자 그 마음 달랬죠.”
“아버지가 국내에 들여 온 태극권, 제가 발전시킬게요.” 이 씨 부녀는 앞으로 태극권 확산을 위해 함께 걸어나가겠다며 웃어 보였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태극권을 배운 뒤 딸이 돌아왔다
이 관장은 자타공인 국내 태극권의 1인자로 꼽힌다. 대한태극권협회의 창립자이자 명예회장을 맡고 있으며 단수는 국내 최고 수준인 8단이다. 태극권 최고수인 9단으로는 그의 스승인 국홍빈 대사를 포함 전 세계에 단 2명뿐이다.
그는 10세 때 태권도를 시작으로 운동의 길로 접어들었다. 18세 때에는 소림권과 당랑권을 익혔다. 운동을 할수록 강해졌다. 20대 초반 정동MBC 앞에서 불량배 5명과 맞붙어 이긴 일화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하지만 수련을 통해 강하고 빨라질수록 그는 자신이 난폭해지는 걸 느꼈다. 눈빛과 말투가 매서워졌다. 화를 낼 때면 아이들은 그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
그를 변화시킨 건 태극권이었다. 젊을 적 중국어로 된 태극권 교본을 보며 홀로 연습하던 그는 1988년이 되어서야 대만에서 태극권을 직접 접하게 된다.
“태극권처럼 부드럽고 고요한 운동을 배운 건 처음이었어요. 태극권은 외유내강의 운동이거든요. 겉으로는 한없이 부드럽지만 속이 강해지는 운동이에요. 다칠 위험이 없으면서 고요하고 품위가 있는 운동이죠.”
태극권을 배운 뒤 그의 가슴에서 불덩이가 사라졌다. 심신이 차분해지니 부부싸움도 사라졌다. 자신을 겁내던 두 딸도 조금씩 그에게 다가왔다. 태극권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도장의 이름을 ‘정무도관’에서 ‘이찬태극권 도장’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태극권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 때부터 그는 운동을 그만둔 딸을 찾았다. 자식의 앞날을 강요할 순 없다지만 자녀가 자신의 태극권을 계승해주기 바라는 마음을 못내 지우지 못했다.
아버지의 설득이 이어질 때마다 딸은 “자연스럽게 마음이 동하면 운동으로 돌아오겠다”며 사양했다. 더이상 ‘무서운’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운동으로 돌아가는 것만은 내키지 않았다.
가인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설득은 이어졌다. 그 사이 딸은 평소 관심이 있던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관련 회사에 입사했다.
이 관장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강요하지도 않았다. 가족끼리 저녁 식사를 할 때 넌지시 “운동은 언제부터 시작할 거니”라고 묻는 게 전부였다. 아버지의 요청이 길어지며 딸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렸다.
“친구들은 이런 저를 엄청 부러워했어요. 태극권 방면에서 아버지가 워낙 유명하시고 도장도 잘 운영되고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운동도 했겠다, 안정적인 아버지 사업에 발만 들이밀면 되는데 왜 하지 않느냐며 배부른 고민을 한다는 핀잔도 들었죠. 어머니도 어차피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며 힘들 거면 아버지 밑에서 일하며 힘들라고 하셨죠.”
결국 가인 씨는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2년 전 태극권의 도복을 입게 된다.
이찬 관장이 쓴 태극권 교습서.
다시 운동을 시작한 가인 씨는 순식간에 태극권 동작을 익혔다. 가인 씨는 ‘조기교육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운동을 직접 하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매일 연습하던 태극권 동작을 봐둔 게 주효했다. 이 관장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투로를 연습해 왔고 가인 씨는 매일 아버지의 동작을 눈으로 좇았다.
얼마 전에는 이 씨 부녀가 함께 태극권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테라피타이치’를 책으로 엮어 냈다. 가인 씨가 사진 모델로 나섰고 이 관장이 글을 썼다.
이 관장은 딸이 운동을 다시 시작한 게 대견하면서도 아직까지 종종 잔소리를 놓지 않는다. 딸이 더욱 열심히 운동에 매진해 태극권 확산에 보탬이 돼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매일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태극권 유단자가 된다”고 강조한다.
최근 들어 잔소리가 하나 더 늘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위를 보고 싶다는 것.
“아직 남자친구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마음 같아서는 같이 운동하다가 퇴근할 수 있는 든든한 사위를 내일이라도 데리고 왔으면 좋겠지만 그게 마음같이 되나요. 딸이 알아서 소개해주길 기다리는 것이죠. 태극권을 배운 뒤 무언가 참고 기다리는 건 세상에서 제일 잘합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