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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안철수 카드 까볼수록 쓸 만”

입력 | 2013-05-17 18:23:00

‘새 정치’ 역풍 경계하면서도 완충지대, 야권 분열 기대




2012년 11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지방분권 촉진 전국 광역·기초의회의원 결의대회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박근혜와 안철수. 두 사람의 2라운드가 예상보다 빨리 시작됐다. 지난해 대통령선거(대선) 주자였던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대선 후 4개월 만에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여권에서는 안 의원의 대항마인 노원병 새누리당 후보로 홍정욱 전 의원을 내세우려 했다. 홍 전 의원의 거절로 무산됐지만 새누리당 지도부는 연이어 그를 만나 출마를 설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 뜻이 담긴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청와대 일각에서는 그 의견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 지역구 출신인 데다 대중적 인기도가 높고 안 의원처럼 참신한 이미지라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대선 본선 1라운드 싱겁게 끝나

이처럼 여권이 안 의원을 떨어뜨리려고 한 이유는 그만큼 그의 국회 입성이 부담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당시 박 대통령의 한 최측근은 “차기 대선주자가 들어와 주목받는 것 자체가 박 대통령에게는 부담”이라며 “가급적 싹을 자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의원이 국회에 입성한 뒤 여권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의 입성이 여권에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셈법이 흘러나오고 있어서다. 그러나 2라운드 결과는 누구도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박 대통령과 안 의원은 개인적인 인연이 거의 없다. 대통령 딸로 시작해 국회의원 14년 생활까지 정치인의 길을 걸은 박 대통령과 의사, 최고경영자(CEO), 교수 등 비정치인의 길을 걸은 안 의원의 살아온 궤적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대선 때 맞붙었지만 상대에게 큰 흠집을 내지 않았다. 안 의원이 처음 박 대통령을 언급한 건 2011년 9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자리를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게 양보하고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였다. 그리고 이듬해 대선 가상대결에서 박 대통령과 엎치락뒤치락할 정도로 지지율이 급등했을 때 일이다. 안 의원은 박 대통령의 선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한 경북 구미 금오공대에서 청춘콘서트를 열었다. 당시 기자들이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묻자 그는 “원칙 있고 좋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며 높게 평가했다.

박 대통령은 2011년 9월 ‘안철수 현상’에 대해 “우리 정치가 새로운 출발을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이후 안 의원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본인뿐 아니라 측근들이 안 의원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려고 할 때마다 “절대 비판하지 마라”고 말렸다. 이는 안 의원을 비판할 경우 ‘안철수 현상’을 거스르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말이지만, 실제 박 대통령은 안 의원 개인에 대해 호불호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지난해 대선 본선 때도 서로를 깎아내리는 언사를 삼갔다. 두 사람의 1라운드는 안 후보가 중도 사퇴하면서 약간은 싱겁게 끝났다.

‘제3 정당’ ‘풍선론’ 등 2라운드 황금 구상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당선한 안철수 무소속 후보.

이번 재보선 이후 여권에서는 ‘안철수 활용론’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안 의원이 차기 대선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당장은 활용가치가 꽤 있다는 것. 그 전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안 의원이 제3 지대를 형성할 경우 국정운영에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여야 간 대치 속에 안 의원이 하나의 세력으로 제3 지대를 만들어주는 건 국정운영에 나쁘지 않다”면서 “제3 지대를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정의당이 형성하는 것보다 중도 성향이 강한 안 의원이 형성해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부에서는 안 의원과의 관계를 잘 형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아예 그가 신당을 만들어 제3 정당이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 섞인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둘째, 야권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을 부추기는 일종의 매개체로 안철수 카드를 활용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다. 여기에는 안 의원이 제3 지대를 형성하더라도 당분간은 야권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렸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안 의원과 야당 사이에 제1 야권세력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전선이 형성될 공산이 크다”며 “그사이에서 대여를 향한 전선은 흐트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 의원이 화두로 삼을 공산이 큰 ‘새 정치’도 박 대통령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아 오히려 야권 압박용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셋째, 안 의원이 다음 대선 때까지 살아남기엔 많은 고비가 있으며 이를 극복할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안 의원에게 딴죽을 걸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인 것이다.

당장 10월 재·보궐선거와 내년 지방선거는 안 의원 처지에선 존재감을 과시하고 세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동시에 부담이다. 안 의원은 대선 직후 주변에 야권 단일화 늪에 빠진 데 대한 후회의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야권이 분열된 3자 구도로는 쉽게 승리할 수 없다는 현실적 고민은 여전히 그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할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관계, 야권 본거지인 호남에서 별도 출마 여부 등 변수가 많다.

5월 6일 열린 새누리당 전략기획회의에서 일명 ‘안철수 풍선론’이 거론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 의원의 정치적 입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방에 ‘펑’ 터뜨리는 전략을 구사하자는 것이다.

여권 내에서는 이러한 기대가 한가한 소리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당장 안 의원이 새 정치 바람을 일으켜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면 박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집권 초부터 약해질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새누리당 내 유력 차기 대선주자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 당장은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주도하기에 좋은 여건이지만, 시간이 흘러 차기 정권에 관심이 가게 되면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빨라질 수 있다.

당장 이명박 정권만 해도 초기에는 당내 차기 유력 주자였던 박 대통령이 눈엣가시였지만, 임기 말에는 그나마 정권 재창출이라는 끈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 힘을 실어주고 박 대통령도 탈당을 요구하지 않은 채 이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수 있게 협조하면서 정권 재창출을 이뤄냈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은 5월 4일 김한길 대표 체제로 거듭난 민주당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안 의원의 성공 여부는 민주당의 혁신에 달렸다”며 “민주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거듭난다면 그만큼 안 의원이 활동할 공간은 줄어들겠지만, 지금처럼 민주당이 지지부진하다면 그의 말 한 마디가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혁신해 안 의원을 잡아먹거나 민주당이 지지부진해 안 의원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 두 세력이 계속 경쟁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세가 없고, 민주당은 인기가 없는 상황이 지속될수록 새누리당에게 더 유리하다는 얘기다.

동정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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