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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로 그 내비게이션 목소립니다”

입력 | 2013-05-17 18:33:00

대부분 한 성우가 계속 맡아…패턴별 녹음 뒤 조합, 톤-스피드 유지 중요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는 1902만 대(3월 기준·국토교통부)로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자동차 대수와 함께 동시에 늘어나는 것이 있다. 운전자에게 필수품인 내비게이션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내비게이션은 길 안내 외에도 실시간 교통상황까지 반영해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고마운 내비게이션의 음성안내에 따라 운전하다 보면 안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해지기도 하다. 오늘도 ‘500m 앞에서 좌회전입니다. 속도를 줄이십시오’라고 말하는 그들을 만나봤다.

◆ 아이나비

지미애 성우…국내 처음 자부심


팅크웨어는 2000년 국내 최초 PDA(휴대용 정보기기) 기반 내비게이션인 아이나비320을 개발했다. 처음 개발한 내비게이션부터 현재 판매하는 내비게이션까지 아이나비는 한 성우가 길 안내를 맡는다. 지미애 성우가 그 주인공이다. 권현웅 팅크웨어 과장은 “안정감 있고 친숙해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와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가 지미애 성우의 강점”이라고 밝혔다. 지미애 성우 역시 분명한 발음 등 전달력이 좋은 것이 오랜 세월 내비게이션 안내 목소리로 활약할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지미애 성우는 2000년 첫 녹음 당시 굉장히 막막했다고 회상한다. 내비게이션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제품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기계가 길을 알려준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신기했어요. 새로운 종류의 작업이라 굉장히 생소했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기계가 이제는 운전자에게 필수품이 된 것이 놀라울 뿐이라고 한다. 내비게이션이 보편화하면서 타는 차마다 자신의 목소리가 나와 굉장히 뿌듯하다고.

“지금은 내비게이션 업체가 많지만, 초기만 해도 아이나비가 독보적이었어요. 차 대부분이 아이나비를 사용했죠. 제 목소리를 미스 김이라고 부르면서 대화하는 분을 본 적이 있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길을 잘못 알려줬다고 내비게이션에 대고 “틀렸어, 기지배”라고 욕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누나가 길 잘못 알려줘서 이상한 데로 갔잖아요”라고 말하는 후배의 장난 역시 지미애 성우에게는 재미있는 일화일 뿐이다. 다만 새 길이 생기고 도로 표지판이 바뀔 때마다 내비게이션을 계속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자신의 목소리가 변해 듣는 사람에게 혼란을 주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성대가 다른 신체 부위보다 가장 나중에 늙고, 그동안 녹음해놓은 것과 새로 녹음한 것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처음 톤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과거와 같은 목소리로 길 안내를 하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반드시 옛날 목소리를 먼저 듣고 녹음에 들어가요. 처음 녹음할 때 목소리를 기억하고 그대로 소리 내려고 노력하죠. 이런 노력 덕에 여전히 아이나비의 목소리로 활동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 지니

문지현 성우…택시기사가 선호


2003년 말 출시한 현대엠엔소프트의 지니 역시 문지현 성우가 현재까지 길 안내를 맡고 있다. 문지현 성우는 오디션을 통해 뽑혔는데, 그 단계가 굉장히 복잡했다.

“목소리 샘플을 일본까지 보냈다고 들었어요. 당시 우리나라에 그런 시스템이 없었는데 일본에서는 전문적으로 목소리를 연구하는 시스템이 있었나 봐요. 목소리 전문가가 과학적 테스트를 거쳐 제 목소리가 길 안내에 가장 적합하다고 했다는군요.”

문지현 성우는 지니 외에도 다양한 회사의 내비게이션 음성안내 작업에 참여했다.

“초기에는 여러 회사가 내비게이션 제작을 시도했어요. 그때마다 오디션을 봤는데 거의 제가 뽑혔죠. LG도 초기엔 내비게이션 개발을 시도했는데 제가 샘플링 작업을 했어요. 잘나갔어요.”

그러던 어느 순간 이 회사, 저 회사 내비게이션에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현대엠엔소프트의 전신 만도엠앤소프트다. 다른 회사들은 내비게이션 제작에 시들해졌지만, 다행히 만도엠앤소프트는 현재 현대엠엔소프트란 이름으로 계속 내비게이션을 제작한다. 10년 전 지니와의 작업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때 문지현 성우의 탁월한 선택 덕도 있지만, 10년 전과 똑같은 목소리를 유지해온 덕도 크다.

“건강 관리, 목 관리를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해요. 마이크 위치, 몸의 자세와 시야도 과거와 똑같이 유지하죠. 성대의 열림, 입 모양, 목젖의 움직임 등도 하나하나 세세히 기억해 똑같이 하고요.”

그뿐 아니라, 문지현 성우는 아는 길이라도 운전할 때면 반드시 지니를 켜고 운전한다. 운전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다. 운전하는 중에는 자신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내비게이션 사용자가 되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의 부족한 점을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지니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내비게이션이다. 특히 택시기사가 선호하는 내비게이션이라고 문지현 성우는 자랑한다.

“택시를 타면 한두 번 빼고 다 제 목소리가 나오더라고요. 모른 척하면서 기사에게 물어봤어요. 이 목소리 어떠냐고요. 그랬더니 이 아가씨 예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실망하실까 봐 저라고는 말 안 했어요.”

◆ 파인드라이브

전숙경 성우…서울버스 음성안내도


지미애, 문지현 성우에 비하면 내비게이션 음성안내계에서 새내기 격인 전숙경 성우는 3년 전 여름 처음으로 내비게이션 음성안내 작업을 했다. 평범하고 상냥한 톤의 목소리, 섹시한 여자 목소리, 어린 남자아이 목소리, 여자아이 목소리 등 다양한 목소리로 작업했지만 결국 선택된 것은 높낮이에 변화가 없고 오래 들어도 편안한 평범한 목소리였다.

“내비게이션이나 버스, 지하철 안내방송은 그 무엇보다 목소리 톤이 특히 중요해요. 운전에 방해되거나 운전자에게 피곤함을 줘선 안 되니까요. 저도 사투리 버전으로 녹음한 적이 있지만 자꾸 들으면 거슬리더라고요. 그래서 편안한 톤을 선호하는 거예요.”

내비게이션 음성안내는 패턴별로 음성을 녹음한 뒤 조합하기 때문에 일정한 톤과 스피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방 10m 앞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전방’ ‘10m 앞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로 어절을 끊어 읽은 뒤 조합해 문장을 만들기 때문에 각 어절의 톤이나 스피드가 다르면 문장을 연결했을 때 이상해진다. 이렇게 어절 하나하나를 끊어 전국의 모든 지명과 도로를 녹음하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의 음성안내 녹음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전숙경 성우도 3개월 동안 녹음만 했다. 그동안 목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고. 또 감정을 배제한 채 일정한 톤으로 혼자 작업해야 해서 외롭고 힘들었단다. 그래도 그는 재미있는 순간이 많았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지명 가운데 재미있는 지명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대가리, 보체리, 목욕리, 후진길 등 녹음하다가 웃음이 터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전숙경 성우는 서울, 경기 버스 안내방송도 자기 목소리라고 자랑한다. 그 말에 길이나 지명을 잘 알겠다고 하자, 며칠 전 이사 간 집도 제대로 찾지 못할 정도로 길치라고 대답한다.

스마트폰은 기계음 사용 업데이트 빨라

한편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내비게이션 기기를 구매하지 않아도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티맵(T MAP), 올레맵, 김기사 같은 애플리케이션(앱) 덕분이다.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앱은 기존 내비게이션과 달리 길이나 표지판 등이 바뀌는 것을 빠르게 반영한다. 업데이트가 쉽기 때문이다. 빠른 업데이트를 위해 내비게이션 앱은 일반적으로 성우가 아닌 문자음성 자동변환 기술인 TTS(Text to Speech)를 이용한다. 성우를 불러 녹음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티맵, 올레맵 같은 내비게이션 앱은 TTS를 기반으로 음성안내를 한다. 기계음이라 어색하고 이상할 것 같지만, 음성 기술이 발전해 운전하는 데 방해되거나 불편하지 않다.

임은선 객원기자 eunsun.im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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