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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 Up]치익~ 살충제도 한류 바람

입력 | 2013-05-20 03:00:00

獨 헨켈홈케어 R&D센터 한국 이전 왜?




나는 벌레, 기는 벌레 등 갖은 종류의 벌레를 퇴치하는 기술력과 안전에 민감한 깐깐한 소비자들은 다국적 기업 헨켈이 살충제 부문 연구개발(R&D)센터를 한국에 두기로 한 결정에 중요한 밑바탕이 됐다. 연구실에서 실험 중인 오수일 센터장. 안산=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겹겹이 설치된 잠금장치를 통과해 연구소 끝에 다다르자 문에 부착된 경고 스티커가 보였다. ‘△△금지’ 등의 표시가 있을 법한 곳에 더듬이가 긴 벌레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밑에 경고문구가 보였다. ‘실험용 바퀴벌레 사육 중, 마스크 착용 필수.’

긴장한 채 안으로 들어서자 선반 위에 수십 개의 투명한 케이지가 놓여 있었다. 알, 유충, 성충에 이르기까지 성장 단계별로 바퀴벌레들을 사육하는 곳이었다. 김남진 연구원은 “국내에서 ‘집바퀴’로 불리는 ‘독일바퀴’를 개 사료를 주며 기르고 있다”면서 “제품의 효능을 실험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라며 웃었다.

14일 찾은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 반월공단의 헨켈홈케어코리아 연구개발(R&D)센터는 살충제 피크 시즌을 앞두고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세계 75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생활용품기업 헨켈그룹의 살충제 부문 연구시설과 생산시설이 있는 곳이다. 다국적 기업의 R&D센터가 한국에 있는 것만 해도 이례적인데 이곳에서는 ‘홈키파’ ‘홈매트’ ‘컴배트’ 등을 생산해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

지난해 새로 지은 630m²(약 190평) 규모의 R&D센터에는 세계보건기구(WHO) 표준인 ‘피트 그래디 체임버’(Peet Grady Chamber·모든 형태의 살충제 실험이 가능한 거주 공간 크기의 모형) 등 보기 드문 최신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렇게 번듯한 연구소를 국내에 유치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헨켈의 살충제 부문 R&D센터는 원래 바퀴벌레와 개미 연구에 특화된 미국에 거점을 두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1997년 동화약품에서 인수한 모기·파리 퇴치제인 ‘홈키파’ ‘홈매트’와 관련된 연구만 소규모로 이뤄져 왔다. 이마저도 연구소를 한곳으로 통폐합한다는 본사 방침에 따라 계속 폐쇄 위기를 겪었다.

센터장인 오수일 헨켈홈케어코리아 전무는 연구소 폐쇄를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는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 거의 모든 종류의 벌레가 다 있다”며 “미국에 비해 날아다니는 벌레에 대한 연구력을 갖춘 한국에서 제품을 개발하는 게 유리하다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했다”고 말했다.

2010년 독일 본사의 시니어 연구원과 곤충학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이 R&D센터를 통폐합하기 위해 살충제 기술의 핵심역량을 실사하는 비밀 평가단이었다는 것은 뒤에 알게 됐다. 미국에서도 같은 실사를 거친 평가단은 한국이 기술력이나 잠재력에서 우위라고 결론을 내렸다. 2011년 미국 R&D센터에서의 기술 이전이 시작됐고 지난해 한국에 ‘CCTI(Competence Center of Technology in Insecticide)’란 이름으로 통합 R&D센터가 문을 열었다.

현재 헨켈의 살충제 사업 부문은 SC존슨, 레킷벤키저에 이어 세계 3위권이다. 최근 3, 4년간 혹서 등 이상기후로 살충제 시장이 침체기를 겪었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전년 대비 매출이 5% 늘어나는 등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필리핀 등에 첫 수출을 했고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 살충제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신흥지역에도 진출하고 있다. 이런 공로로 올해 초 본사로부터 ‘R&D 엑설런트 어워드’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벌레 잡는 기술도 한류(韓流)’란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최근에는 살인진드기 등 건강을 위협하는 신종 벌레가 증가하고 있어 11명의 연구원도 긴장의 끈을 한시도 늦추지 않고 있다. 안산 R&D센터에서는 미국 등에서 ‘웨스트나일열’이란 매개성 질병을 일으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는 빨간집모기를 비롯해 ‘뎅기열’을 옮기는 숲 모기도 사육하면서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 살충제 시장에서의 중요한 또 다른 이슈는 안전성 문제다. 헨켈홈케어코리아 측은 “한국 소비자들이 인체에 무해한 성분인지 워낙 꼼꼼히 따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한국에서 통한 제품은 해외에서도 성공하다는 것을 본사도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산=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