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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도전-혁신” 외쳐도 취업땐 대기업만 바라본다

입력 | 2013-05-20 03:00:00

■ 20개大 1301명 대상 ‘서비스기업 인식’ 조사




“구직자 입장에선 규모가 크고, 업계에서 잘나가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죠. 무엇보다 안정성이 높으니까요.”(권영진·27·경상대 회계학 4학년)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취업하고 싶은 기업의 창의성이나 선한 이미지보다 기업 경쟁력을 훨씬 더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전적인 일’보다는 ‘안정성’을 더 선호한다는 뜻이다.

○ 대학생이 바라본 서비스 기업들

동아일보와 한국서비스마케팅학회는 최근 전국 20개 대학의 학생 1301명을 대상으로 서비스 업종 기업에 대한 인식 조사를 했다. 조사는 은행과 신용카드사, 백화점, 대형마트, 커피전문점, 통신사 등 15개 업종에서 상위 5, 6개 기업을 각각 제시하고 업종별로 훌륭한 품질(기업 경쟁력)을 가진 기업과 창조적 혁신(창의성)을 이룬 기업, 착한 서비스 기업, 입사하고 싶은 기업을 각각 선택하도록 했다.

조사에 따르면 훌륭한 품질 부문에서는 대부분의 업종에서 업계 1위 기업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SK텔레콤(58.2%)과 이마트(47.7%), 국민은행(37.5%), 스타벅스(36.5%), 롯데백화점(32.9%) 등이 대표적이었다. 다만 신용카드 부문에서는 업계 1위인 신한카드(14.5%)가 4위에 그친 반면에 현대카드(19.7%)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창조적 혁신을 이룬 기업을 묻는 질문에서는 대다수 응답자가 기득권을 가진 1위보다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후발업체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 대형마트에선 미국계 코스트코(30.2%)가 이마트(27.1%)를 앞섰고, 백화점에서도 신세계(23.1%)가 롯데(19.9%)보다 많은 선택을 받았다.

착한 서비스 기업에 대한 질문에선 신용카드 회사의 경우 ‘없음’(34.8%)이 1위에 올라 6개 후보 업체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외국어교육과 연예기획, 소셜커머스, 리조트 등에서도 ‘착한 서비스 기업이 보기 중에 없다’란 답변이 40∼50%나 됐다.

○ 내 회사는 ‘창조’보다는 ‘품질’

개별 질문에 대해서는 대체로 예상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입사선호도와 다른 요소들의 관계를 따져 보니 의외의 결과가 도출됐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기업의 창의성이나 선한 이미지보다는 기업 경쟁력, 즉 안정성을 더 중요시하고 있었다.

은행 업종을 예로 들어 보면 그런 사실이 명확하게 나타난다. 국민은행을 ‘훌륭한 품질’을 가진 기업으로 지목한 대학생 484명 중에서는 무려 330명(68.2%)이, 신한은행이 그렇다고 대답한 277명 가운데는 175명(63.2%)이 해당 은행에 취업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창조적 혁신’ 부문에서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을 선택한 학생들이 같은 은행 입사를 원하는 비율은 각각 57.0%, 51.7%로 떨어졌다.

올해 2월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류모 씨(26)는 “창조적 혁신이나 착한 서비스는 ‘이미지’이지만 구직자들에게 직장은 현실의 문제”라며 “당장 내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고, 어떤 보상을 받는지가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추가적인 통계 분석에서도 나타났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통계 전문 프로그램(SPSS)을 활용해 훌륭한 품질과 창조적 혁신, 착한 서비스 등이 입사 선호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는 ‘인과관계 지수’를 계산해 봤다.

인과관계 지수는 0∼1 사이인데, 두 항목 간 인과관계가 클수록 값이 커진다. 은행의 경우 ‘품질-입사’의 인과관계 지수가 0.311, ‘창조-입사’와 ‘착한-입사’는 각각 0.112, 0.132였다. 여 교수는 “수치가 0.3 이상이면 품질이 입사 선호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뜻”이라며 “창조적 혁신이나 착한 서비스는 진로 선택 등 직접적 행동에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14개 카테고리에서도 이런 결과가 예외 없이 도출됐다. 통신업에서는 LG유플러스가 창조적 혁신을 이룬 기업이라고 선택한 305명 중 71명이 LG유플러스 입사를 원했다. 이는 업계 1위인 SK텔레콤에 가겠다는 응답자(153명)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는 “도전과 혁신은 긍정적인 이미지지만 이는 곧 리스크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고급 인력들을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일에 투입하려면 도전을 요구하기에 앞서 실패를 용인하는 기업문화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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