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형법상 공직자는 직무와 관련해 대가성이 있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처벌된다.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처벌이 가능하고,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하지 않으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공직자의 뇌물 수수 사건 때마다 직무와 관련이 있는지, 또 대가성이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많다. 이런 허점이 공직사회의 부패를 온존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곤 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작년 8월 입법예고한 ‘부정청탁 금지 및 이해충돌 방지 법안’(일명 김영란법)은 이런 구멍을 막기 위한 취지였다. 직무 관련성이 있든 없든, 대가성이 있든 없든 공직자가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으면 무조건 처벌한다는 것이 새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와 법무부는 이 법안을 논의하면서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처벌하고,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 쪽으로 완화했다. 아무리 공직자가 특수 신분이라고는 하지만 원안대로라면 과잉 처벌에 해당한다고 법무부가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정 법안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라는 두 가지 요건 가운데 직무 관련성 하나만 충족해도 처벌하도록 한 것은 이전보다 진전된 내용이다. 하지만 지금의 법원 판결도 직무 관련성 금품 수수는 대부분 대가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수정 법안이 갖는 실익은 별로 없다. 또한 수정 법안은 공직자에게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한테서는 금품과 향응을 받아도 괜찮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이런 식이라면 왜 새로 법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온정주의를 토대로 기생하는 이런 뇌물 문화를 바로잡아야 공직사회의 부패, 나아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부패를 근절할 수 있다. 그러려면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일체의 금품과 향응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