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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정승호]5·18을 두 번 죽이지 말라

입력 | 2013-05-20 03:00:00


정승호 사회부 차장

광주에는 2004년부터 ‘518번’ 시내버스가 다니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의 흔적을 더듬어 보도록 노선이 짜여 있다. 이 버스는 5·18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경유한다. 그래서 버스는 5월만 되면 붐빈다. 그날의 한이 가슴속에 옹이처럼 박혀 버린 유족과 참배객들이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광주시는 5월이면 기존 버스 9대를 18대로 늘려 운행한다. 당초 노선 자체가 없었던 ‘518번’ 버스는 5·18기념재단 등 5월 관련 단체들의 요구로 만들어졌다. 5·18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고 외지인에게 ‘민주·인권·평화’의 정신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였다. 시민들은 518번 버스를 광주의 자부심으로 여긴다.

광주에는 전남대 정문, 옛 전남도청, 광주역 등 26곳에 29개의 ‘5·18 사적지’가 있다. 그날의 함성은 역사 속에 묻혔지만 청소년들이 민주주의를 배우는 현장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올해 5·18 사적지를 둘러보는 외지인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이 예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 아마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이 ‘5월 광주’로 발길을 이끌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광주는 우울하고 슬프다. 국가보훈처는 5·18민주화운동 33주년을 앞두고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공식 식순에 포함시켜 달라는 광주시민사회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민심을 자극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5·18 기념식을 주관한 2003년부터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제창됐다. 그러나 2009∼2010년 기념식 공식 식순에서 빠졌고, 2011∼2012년에는 합창단만 부르는 형식으로 진행되면서 퇴출 절차를 밟았다. 5월 단체는 이에 반발해 행사에 불참했고 결국 올해 기념식은 반쪽으로 치러졌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 특수부대 개입설과 일부 극우단체의 5·18 비하는 시민들의 아픈 가슴을 또 한 번 후벼 파 놓았다. 일부 강경 보수 성향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는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글이 난무하고 있다.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했다. 관에 안치된 희생자들의 사진에 ‘경매에 들어선 홍어’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이는 역사 왜곡을 넘어 희생자나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살인 행위나 다름없다.

북한군 개입설은 민주화 이후 정부 조사는 물론이고 대법원 판결로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결론이 났다. 5·18 당시 현장을 지켰던 동아일보의 선배 기자들도 한목소리로 광주 민주화운동이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한 시민들의 의로운 항거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부 탈북자가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같은 주장의 신뢰성이 엄밀하게 검증되기 전에는 공론의 장에 받아들여선 안 된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4·19혁명,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을 거쳐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그 꽃을 피웠다. 지금 우리 사회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5월 광주에서의 의로운 희생을 바탕으로 열매를 맺은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진 지 3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1980년 당시 신군부가 유포한 왜곡된 정보가 걸러지지 않은 채 유포되고 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5·18 유가족들은 공식 사망자 수도, 발포 명령자도 밝혀지지 않는 등 희생자의 원혼조차 말끔히 달래지 못하는 상황에서 5·18에 대한 폄훼와 비방, 왜곡에 비통함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5·18은 죽음과 피로써 이 땅에 민주화의 초석을 이뤄 낸, 그리하여 우리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 항쟁이었으며 3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시민들이 전야제와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 놓아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광주에서

정승호 사회부 차장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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