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해(1963∼ )
이 시절에는요
여자들이
시렁 위에 얹힌 작지만 앙칼진 칼 하나씩 손에 들고 나오는데요
여자들이 칼을 들고 설쳐도 암말 못하는 건
지천에 내걸린 풋것들을 오살지게 베어다
서방과 새끼들을 거두기 때문인데요
이 시절에는요
세상 모든 여자들은 코밑이 거뭇해지고
팔뚝 속에 알이 차올라서는
지천에 돋는 풋것들이 아까워라, 아까워라
저도 모르게 들판과 한판 엉겨붙게 되는데요
난생처음 억세디억센 수컷이 되는데요
가끔씩 그 독한 칼날에
논배미가 잘리고 칡뿌리가 잘리고 수맥이 잘리기도 하는데요
이 시절 여자들은요
푸줏간 안주인이 내걸린 고기들을 슥슥 잘라가듯
이 나무 이 바람 이 구름을
훌훌 베어 망태기에 담아서는
종다리처럼 지저귀며 언덕을 넘어가는데요
하늘도 암말 못한다는데요
산과 들에 풋것들이 지천으로 돋아나는 봄날, 망태기 가득 나물을 캐는 건강한 여인들을 그린 풍경으로만 읽어도 썩 호쾌하다. 그런데 이 시에서 ‘이 시절’을 자연의 계절로만 읽으면 좀 아깝다. 자연 속에서 나물 캐고 뛰놀던 어릴 적 기억을 현재의 시대상(時代相)으로 끌어올리는 시인의 힘! 자연을 공간 배경으로 삼으면 시에 힘이 생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시인의 기량이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