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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우 1924~2013]低성장 시대에 떠난 ‘高성장의 아이콘’

입력 | 2013-05-20 03:00:00

■ 삶 자체가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




19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남 전 총리의 영정사진 앞에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나는 성공한 정책가도 아니고 성공한 경제학자도 아니었다. 다만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정책 의지를 시장경제 이론의 틀 안에서 소화하려고 안간힘을 다한 것은 사실이다.”(2009년 6월 27일자 동아일보 A24면 ‘경제개발의 길목에서’)

18일 세상을 떠난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2009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회고록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주역이라는 주변의 평가와 관련해 스스로를 낮췄다. 하지만 1969년 45세 때 재무부 장관에 발탁돼 역대 최장수 경제부총리를 지낸 남 전 총리의 삶은 원조로 연명하던 세계 최빈국에서 고속 성장으로 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선 한국의 현대 경제사(史) 그 자체였다.

1924년 경기 광주시에서 태어난 남 전 총리는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1969년 10월 재무부 장관에 발탁돼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자신이 직접 주재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평가단 회의에서 소신 있는 발언을 하던 남 전 총리를 눈여겨봤던 박 전 대통령은 “남 교수,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맛 좀 봐”라는 말과 함께 공직 경험이 전혀 없던 그를 장관에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남 전 총리는 재무부 장관 취임사에서 “장관은 과객(過客·손님)에 불과하니, 공무원들이 잘해야 경제가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1946년 국민대 정경학과에 입학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차장 등을 지낸 신익희 선생의 제자가 되면서 학자의 꿈을 키웠던 그는 당시 공직생활을 오래 이어갈 생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최장수 재무부 장관(4년 11개월), 최장수 부총리(4년 3개월)의 기록을 세우며 14년의 ‘과객’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 한국은 농가소득 증대와 새마을운동 등을 중심으로 한 1,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마무리하고 중화학공업 집중 육성을 뼈대로 한 3차 계획을 앞두고 있던 시점. 남 전 총리는 기업들이 빌린 사채 부담을 줄여주는 8·3 긴급 사채동결 조치와 중화학공업 선언 등을 주도하며 본격적인 산업화의 물꼬를 텄다.

그가 재무부 장관과 경제부총리를 지내는 동안 한국은 세계경제를 뒤흔든 1, 2차 석유파동에도 연평균 10% 수준의 고속성장을 이어갔다. 1977년 달성한 수출 100억 달러 및 1인당 국민소득(GNP 기준) 1000달러 돌파 등 한국 경제의 전환점이 된 성과들이 모두 그의 재임기간에 나왔다.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만류를 무릅쓰고 국무총리를 끝으로 공직생활에서 은퇴한 뒤 남 전 총리는 수출 인프라 구축과 경제선진화에 힘을 쏟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여 ‘영원한 현역’으로 불렸다. 1983∼1991년에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대통령을 설득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종합무역센터와 코엑스 전시장을 만들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동북아 시대에 대비해 ‘물류 중심 국가 건설’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2005년에는 진념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과 함께 한국선진화포럼을 설립해 선진국 문턱에서 주춤하던 한국경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지난해 9월에는 대선을 앞두고 전직 경제부처 장관 10여 명과 함께 ‘경제민주화’에 대한 토론회를 열어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반대, 무상복지 확대에 대한 비판적 견해 등을 내놨다.

체계적 미시경제학 이론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경제학자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온 남 전 총리는 경제성장과 수출을 중시한 ‘서강학파’의 대부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캠프였던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종인 가천대 석좌교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등 현 정부의 주요 경제계 인사들이 그의 후배 또는 제자다. 그는 서강학파뿐 아니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으로 치켜세웠던 고 김재익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서석준 전 경제부총리 등을 발탁하기도 했다.

남 전 총리가 주도했던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에 대해 일각에서는 “수출 대기업 중심 정책으로 경제 양극화 구조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남 전 총리는 “(나는) 무조건적인 성장론자가 아니다. 빵과 자유를 양립시킬 수 있는 경제체제는 시장경제밖에 없다. 성장 없는 분배, 분배 없는 성장은 허상이다”라고 여러 차례 해명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산업화의 명암을 동시에 간직했지만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압축성장을 이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분”이라며 “향후 한국경제를 위해서는 그 부작용을 바로잡으며 성장을 이루는 ‘제2의 남덕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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