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살펴달라는 기업 호소에 귀 막고… 여론몰이식 입법”
“이 법에 약간 문제가 있더라도 수정 통과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재계에 굴복했다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겁니다.”(이춘석 민주당 의원)
“동료 위원을 경제단체의 사주를 받은 것처럼 폄하하는 회의를 계속해야 하는지….”(권성동 새누리당 의원)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정당한 의견 개진도 폄훼해 버리는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과거 ‘사농공상(士農工商)’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은 첫째인 선비, 기업인은 가장 낮은 상인 같다는 것이다.
○ 현장 무시한 입법에 기업 냉가슴
19대 국회 들어 경제민주화 입법이 쏟아지자 기업들이 신음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여야의 선명성 경쟁으로 현장을 무시한 입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정년연장법안이 통과되면서 종업원 300명 이상 대기업과 공공기관, 지방공기업은 2016년부터 직원 정년을 60세까지 보장해야 한다. 그 이듬해에는 300명 미만 기업과 정부, 지방자치단체로 확대된다. 이 법의 적용 범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는 정부와 공공기관으로 한정됐지만 입법 과정에서 민간으로까지 확대됐다.
공공기관들이 내년부터 2016년까지 신규 채용 시 전체 정원의 3%를 만 29세 이하 청년 미취업자로 뽑아야 하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도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민간부문에 청년 고용을 강제하는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대기업의 부당한 단가 인하 압력을 막는다는 취지의 하도급법 개정안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경동 한국외국어대 교수(경제학)가 최근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중기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을 위임할 때의 효과를 예측한 실험에 따르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이 얻는 이익도 오히려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
○ “정상적인 경영 효율성 추구도 규제”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따가운 시선은 대·중소기업 모두에 부담이다. 정치권이 논의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경제력 집중을 문제 삼아 기업들의 정상적인 거래까지 규제할 여지가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갤럭시S4’에 들어가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전량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공급받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7월 시작되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에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정구용 인지컨트롤스 대표는 “원재료를 공급받거나 기술 개발을 위해 부득이 계열사를 보유한 중소기업까지 과도한 세금을 물게 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입법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6월 임시국회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을 폐지하는 공정거래법, 대주주 자격 심사를 확대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취임 직후 “을(乙)의 눈물을 닦아주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강도 높은 입법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이는 자국 기업은 물론이고 외국 기업에도 혜택을 주며 활동을 독려하는 우리의 경쟁국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중국은 합자기업이 개발한 브랜드에 대해 세금을 공제해주거나 하이테크 기술 기업의 소득세를 감면해준다. 이에 따라 제너럴모터스(GM), 폴크스바겐, 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연구개발(R&D)센터를 세우기 위해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 역시 총리 주도로 국가전략특구를 조성해 용적률 완화, 법인세 인하, 카지노를 포함한 리조트 건설, 해외 우수 교육기관 유치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박창규·김용석·이승헌 기자 k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