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정신 잇단 왜곡, 왜?
이날 저녁 괴한은 강경우파 성향의 웹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스스로 ‘범행’을 시인하는 인증샷을 올렸다. 그는 “(이걸 보고) 화가 날 좌빨(좌익과 빨갱이를 합친 비속어)들을 생각하니 흐뭇하다”고 적었다. 같은 날 서강대 부산대 등 다른 대학에서도 5·18을 소개한 대자보가 찢어졌다
최근 강경우파 인터넷 사용자들이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일부 탈북자의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이어 대학 내 5·18 사진전까지 훼손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하루 이용자가 평균 100만 명에 달하는 일베에는 5·18 논란이 한창이다. 일부 회원들은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시각을 고수하며 “북한 특수부대가 남한에 진을 치고 국군을 향해 도발한 뒤 광주 시민들이 희생되자 국군이 학살 주범이라고 선전 선동한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사이트에는 “무기고가 광주시민들에게 4시간 만에 털린 것은 북한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 “북한제 카빈 소총에 사망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북한군이 이 총 갖고 있다가 들킨 거 아니겠느냐”는 등의 근거 없는 주장들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5·18을 ‘오씨팔’ ‘폭동절’로 비하하며 반감을 드러내는 게시물도 적지 않다.
강운태 광주시장이 5·18을 왜곡하는 글을 삭제하지 않는 온라인 사이트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나선 것에 대해서도 일베 회원들은 “자기들만 표현의 자유 들먹거리는 ×만도 못한 민○당”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전라도가 전라도끼리 모여 전라도 양민을 무참히 죽여 온 그 인간 백정의 전라도 역사 알아보자꾸나”라는 내용의 지역감정을 원색적으로 드러내는 주장도 나온다. 회원들 사이에선 호남을 비하하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통용된다. ‘홍어’(전남 흑산도 특산물), ‘까보전(까고 보니 전라도)’, ‘알보칠(알고 보니 시계 방향으로 7시)’ 등이 호남을 비하해 지칭하는 은어다.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올인코리아, 뉴라이트 폴리젠 등의 사이트에서도 5·18과 관련된 강경우파적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5·18때 먼저 공격을 한 쪽은 군이 아니라 폭도들이었다” “정부의 5·18 조사 결과는 전두환 신군부에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것”이라는 등의 주장이다.
5·18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이 올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 억눌렸던 강경우파 세력들이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선 결과를 과거 독재정권의 합리화로 착각하고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반격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5·18 기념식 때마다 제창해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보훈처가 올해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5·18 자체에 대한 논란이 촉발된 측면도 있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대사에 대한 극우적 접근은 사회통합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철학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5·18을 부정하는 주장이 여전한 것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선 강하게 항의하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는 역사 교육에 취약했다는 증거”라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극우적 시각을 배제하는 게 건전한 보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5·18은 민주주의적 열망이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억눌린 사건인 데다 영남 출신 대통령이 무력진압을 지시하고 광주시민이 항거한 지역 갈등적 요소까지 겹쳐 있어 이 같은 주장이 싹틀 소지가 크다는 해석도 있다. 강경우파들은 ‘민주화 vs 산업화’ ‘호남 vs 영남’ 등의 이분법의 틀을 들이대며 양측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경우파 세력들은 현대사나 북한 문제처럼 피아 구분이 분명해 역풍이 불 소지가 적은 주제를 주로 이슈화한다”며 “이는 독일의 네오나치나 일본 극우집단이 보이는 행태와 유사한 것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신광영·조동주·김성모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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