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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염원 담은 ‘임을 위한 행진곡’ 종북노래 매도는 5·18에 대한 모독”

입력 | 2013-05-21 03:00:00

■ 1982년 ‘행진곡’ 작곡한 김종률씨




“정부가 제창하지 못하게 한다 해도 결코 멈추지 않을 노래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 씨(55·사진)는 20일 올해 5·18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에서 다함께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순수한 민주화운동의 표현인 이 노래가 좌익이나 종북 노래로 왜곡되는 것에 분노도 표시했다.

김 씨가 ‘임을 위한…’을 만든 건 3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18민주화운동의 아픔이 채 아물지 않았던 1982년 2월 20일 광주 망월묘역에서는 ‘영혼결혼식’이 열렸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옛 전남도청을 지키다 산화한 윤상원 씨와 1979년 노동현장에서 숨진 박기순 씨를 위한 행사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 씨 등 예술인 11명은 영혼결혼식을 추모하기 위해 노래극 ‘넋풀이’를 준비했다. 이들은 1982년 4월 말 예술인 사랑방 역할을 하던 광주 북구 운암동 소설가 황석영 씨(70)의 집에 모였다. 김 씨는 1979년 대학가요제에서 ‘영랑과 강진’으로 입상했고 200여 곡을 작곡했다. 그는 작곡한 곡 중 6곡을 골라 넋풀이 노래로 준비했다. ‘임을 위한…’은 노래극 마지막 부분에 들어갈 제창 곡으로 이날 김 씨가 하룻밤 만에 작곡했다. 그는 창문을 군용 담요로 가린 채 카세트테이프로 이 노래를 녹음했다. 그는 “두 열사에 대한 존경과 감사 표시가 하나로 합쳐져 폭발적인 노래를 만든 것 같다”고 회고했다.

‘임을 위한…’에는 먼저 간 민주 열사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 있다. 김 씨는 “5·18민주화운동 도화선이 된 계엄군의 가혹한 진압을 지켜보기만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라고 전했다.

김 씨는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지만 앞장서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 당시 두 열사의 용기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을 ‘임을 위한…’으로 속죄하고 싶었던 것. 열악한 상황에서 녹음된 이 노래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김 씨는 1982년 9월 입대한 뒤 이듬해 3월 첫 휴가를 나와 서울에서 자신이 만든 ‘임을 위한…’을 듣게 됐다. 연세대 정문을 지날 때 시위를 하는 학생들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김 씨의 친구는 “요즘 시위를 하면서 부르는 최고 히트 곡”이라고 했다.

‘임을 위한…’은 1985년 망월묘역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제5주기 기념식에서 처음으로 제창됐다. 1997년 국립5·18민주묘지가 조성된 뒤에도 5월이 되면 늘 울려 퍼졌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2010년 이 노래를 빼고 ‘방아타령’을 넣으려다 강한 비판을 받았다. ‘임을 위한…’은 2011년 합창으로 바뀌었다. 올해 5·18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은 제창을 하지 못해 반쪽 행사가 됐다. 김 씨는 “5·18민주화운동 때 평범한 대학생이 작곡한 이 노래를 일부에서 삐뚤게 바라보는 것은 민주정신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음반회사 JR미디어 대표로 재직 중인 김 씨는 “자유와 민주주의 억압에 맞서 목숨을 아끼지 않은 분들에 대한 존경이 담긴 ‘임을 위한…’을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