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박물관 특별전으로 본 경남 탈놀음의 ‘저항 코드’
경남 오광대는 양반을 조롱하며 계급사회를 비판하는 의식이 담긴 탈놀음이다. 아기자기한 가면에서도 이런 정신은 오롯이 묻어난다. 오광대의 메인 등장인물인 말뚝이(오른쪽 위)는 평민 혹은 노비 신분이나 크기도 크고 코를 강조해 상대를 압도한다. 그 아래 빨간 애기 양반탈은 상대적으로 나약한 모습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오광대는 다른 탈놀음과 달리 경남 지역에서만 전승돼 왔다. 오광대를 처음 연구한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1904∼1948)에 따르면 오광대는 초계 밤마리(현재 합천군 덕곡면)에서 시작돼 경남 각지로 퍼졌다. 19세기부터 경남의 지방 민속으로 자리 잡았고, 그 가운데 통영과 고성, 가산 오광대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6호, 제7호, 제73호로 지정돼 있다. 민속박물관의 박수환 학예연구사는 “하나의 탈놀음이 같은 도내에서만 전파되어 내려온 유일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도대체 오광대의 어떤 면이 경남 백성을 사로잡아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한 걸까.
① 말뚝이는 조선의 스파르타쿠스?
오광대의 가장 큰 특징은 양반에 대한 비난과 풍자가 강하다는 점이다. 다른 탈놀음도 사회비판적 성격이 없진 않다. 하지만 오광대는 계급사회에 대한 조롱이 극 전체의 주제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심엔 ‘말뚝이’가 있다.
② 오광대는 페미니즘과 외세저항의 원조
오광대의 얼개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점도 묘미다. 이 중 고성오광대는 ‘할미영감 과장’을 강조한 게 특징. 다른 오광대는 이 과장에서도 양반 비판을 주제로 다루지만, 고성오광대는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여성에 초점을 맞춘다.
내용은 이렇다. 조강지처 할미는 우연히 둘째 부인을 얻어 집을 나간 영감과 마주친다. 할미와 둘째 부인이 다투던 중 할미가 넘어져 죽는다. 상여꾼들이 할미의 상여를 메고 나가며 곡을 하는 것으로 과장은 마무리된다. 지아비에게 버림받고 생까지 마감하는 여인네의 기구한 운명을 보여주는 가면극은 조선시대에 희귀하다.
반면 통영오광대는 ‘포수사자 과장’을 중시한다. 담비를 잡아먹는 사자를 총으로 쏴 죽이는 포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박 연구사는 “사자는 한반도에서 전통적으로 정화의 의미를 지니는 동물이나 오광대에선 해를 끼쳐 죽여야 하는 대상”이라며 “여기서 사자는 악독한 외세를, 포수는 이를 물리치는 민족 영웅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통영오광대 사자탈
오광대는 민초의 한과 희망이 담긴 예술이다. 하지만 오로지 민중의 의지로 조선시대에 이런 발칙한 공연이 경남 곳곳에서 성행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공연을 유치할 금전적 비용을 일반 백성들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상박 동아대 명예교수는 오광대의 흥행을 공연이 지닌 ‘토착신앙’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마을 제사나 대형 굿이 있을 때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탈놀음을 벌였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정착보다는 떠도는 습성을 지닌 놀이패를 공식 연회에 초대하는 것은 지방관아나 유지들의 몫이었다. 정 교수는 “기존에 지역마다 뿌리내린 샤머니즘과 새로이 전파된 탈놀음이 융화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광대에 들어있는 ‘오방신장무 과장’과 ‘문둥이 과장’은 이런 개연성을 높여준다. 오방신장은 동서남북과 중앙을 상징하는 방위신으로 춤을 추며 정화의식을 벌인다. 문둥이 과장은 문둥병에 걸린 주인공이 춤으로 한을 풀고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친다. 이런 주술성은 지역 제례와 오광대를 잇는 연결고리로 이해된다.
④ 오광대 전파의 공로자는 향리(鄕吏)
정양환·최고야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