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경제부 기자
2009년 12월 어느 날 경기 과천시의 한 중국집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하던 한 관료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 관료는 옛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으로 1년 반 동안 파견 나갔다가 금융정보분석원장(1급)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밥을 먹으며 소주로 건배를 몇 번 했지만 잔을 돌리지는 않았다. 일 얘기만 했다.
‘전형적인 관료’란 생각을 했을 때 중국집 주인이 들어왔다. 관료와 주인은 ‘형, 아우’ 하는 사이처럼 보였다. 주인은 소주 한 잔을 벌컥 들이켜더니 공무원에게 빈 잔을 내밀었다. 둘이서 잔을 3번쯤 주거니 받거니 했다. 급기야 주인은 1시간에 1만 원 하는 옆집 노래방에서 트로트 한 곡 뽑자는 제안도 했다. 눈이 절로 감길 정도로 피곤했던 관료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장사 안 돼 죽겠다”는 주인의 한탄을 자기 일처럼 귀 기울였다. 나중에 관료는 기자에게 “항상 열심히 사는 사람이어서 딱히 해줄 건 없어도 얘기를 잘 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일부 보험사는 금감원에 접수되는 민원건수를 줄이려고 민원인과 타협하거나 민원접수를 늦추려 고의로 시간을 끌었다. 업계의 불평은 여러 경로를 통해 금감원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요약하면 ‘일부 소비자가 민원감축 지시를 악용해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다’, ‘획일적인 감축목표가 경영에 부담을 줄 수 있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다’ 등.
이건 보험업계가 자신들이 최악의 위기에 놓여있음을 몰라서 생긴 불협화음이다. 소비자 신뢰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줄여서 줬다가 금감원 검사에서 적발되거나 고객정보를 무단으로 조회하다가 징계를 받는 식의 사건이 여전히 많다. 모든 보험 민원에는 ‘도무지 보험사 말을 못 믿겠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이대로는 보험사가 지속가능한 경영을 할 수 없다.
보험사는 최 원장이 주문한 내용의 행간을 읽어야 한다. 그의 주문이 100개였던 민원건수를 단순히 50개로 줄이라는 것이었을까? 민원을 낼 줄 몰라 민원건수와 상관없는 소비자는 방치해도 된다는 말일까?
아직도 방법을 모르고 있는 보험사가 있다면 최 원장의 일화가 좋은 시사점이 될 것이다. 식당주인의 뻔한 한탄을 잘 들어주는 것처럼 다소 귀찮은 민원도 해결책을 같이 찾아보라. 신규계약 고객은 구두밑창이 닳도록 찾아다니는 보험사가 보험금 달라는 기존 계약자를 만나 그의 입장에서 상담해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고객은 ‘잡아둔 물고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