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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로 가는 길] 창업가의 천국 美스탠퍼드대

입력 | 2013-05-24 03:00:00

“창업하라, 강의 빠져도 좋다”… 교수가 투자하며 학생 격려




4월 17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기업가적 사고를 하는 리더를 위한 세미나’ 현장. 스탠퍼드대 교수이자 모카파이브라는 벤처기업의 창업자인 모니카 램 씨가 강연자로 나섰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이 행사는 스탠퍼드대 학생들로 구성된 창업 지원그룹이 지역 벤처기업이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운영된다. 샌타클래라=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 미국 스탠퍼드대 3학년에 재학 중인 원종혁 씨(21)는 2학년 때 처음 창업을 경험했다. 최근에는 결혼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메리매리(MerryMarry)’를 개발해 다시 한번 창업에 도전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창업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전혀 없었다고 원 씨는 말했다. 창업 때문에 한 학기 수업에 모조리 빠져도 학교는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창업을 하도록 격려한다. 》

그는 “기본적으로 스탠퍼드대 학생들은 내 것을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려는 욕구, 즉 창업에 대한 동경이 있다”며 “대부분의 학생이 졸업하기 전에 한두 번씩 창업을 경험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 교수도, 총장도 창업하는 학생에게 투자

창업문화는 정부의 정책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창업가의 천국’으로 불리는 스탠퍼드대는 어떻게 해서 이런 문화를 형성하게 됐을까. 저력은 무엇일까. 4월 초 스탠퍼드대에서는 컴퓨터공학과 학생 10여 명이 함께 창업을 하겠다며 집단 휴학을 신청해 화제가 됐다. 창업을 위해 휴학하는 일이 흔하긴 하지만 10여 명이 빠져나가는 것은 드문 일이다. 존 헤네시 총장을 비롯한 교수들은 직접 투자까지 하며 이들을 격려했다.

스탠퍼드대에서는 교수가 학생에게 투자자를 소개하고 사업에 대해 조언하거나 투자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엔지니어스쿨의 교수 대부분은 창업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학위 취득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창업을 선택한다. 대기업 대신 벤처기업에 취직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컴퓨터공학 관련 학부 졸업생 41%가 신생 벤처기업을 선택했다.

지난달 스탠퍼드대의 한 강연장. ‘아시아 첨단기술 분야의 창업가정신’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인도의 벤처 창업자들은 사업을 어떻게 구상했는지 설명했다. 문자를 통한 검색엔진을 개발한 벤처기업 ‘이노즈’의 창업자 디파크 라빈드란 씨도 강사로 나섰고 인도 최대의 버스 예매 사이트인 ‘레드버스’의 창업자 파닌드라 사마 씨는 인도 현지에서 화상전화로 강연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강연자와 학생들이 격식 없이 다과를 즐기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스탠퍼드대 창업문화의 강점은 이처럼 ‘살아있는 성공 모델’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탠퍼드는 다양한 벤처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2000여 명의 고급 인력을 실리콘밸리에 배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강사인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은 생생한 노하우를 전수하며 수준 높은 창업교육을 제공한다.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대략 청중의 절반은 스탠퍼드대 학생이고 나머지는 실리콘밸리 종사자다. 강의 내용은 전부 유튜브에 공개된다. 이런 자리를 통해 학생들은 성공한 창업자의 성공비결을 전수받고 다양한 네트워킹을 쌓는다.

학교뿐 아니라 학생들도 성공한 벤처 창업가들을 초청한다. 매주 수요일 창업 세미나를 여는 스타트업 서포팅그룹(BASES)은 강연료를 비롯한 행사비용을 기업으로부터 협찬 받아 충당하고 있다. 기업들도 인재 충원의 파이프라인이 되는 세미나를 적극 후원한다. 이날 강연을 들으러 온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재학생 방재석 씨(22)는 “학생들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창업가를 초청하고 관계를 맺는 분위기는 다른 학교에는 없는 스탠퍼드대 고유의 문화”라고 말했다.

○ 돈, 인재, 성공모델 ‘원스톱 창업 생태계’

스탠퍼드대의 이런 독특한 창업문화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실리콘밸리에는 ‘20마일 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투자는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20마일 반경 안에서 이뤄진다’는 뜻이다. 돈(벤처캐피털)과 인재(스탠퍼드대), 성공모델(대기업)이 모여 있는 지리적 접근성 때문에 생긴 말이다.

스탠퍼드대를 둘러싼 지리적인 환경은 독특하다. 캠퍼스 바로 북쪽에는 샌드힐 로드가 지나는데 이 길에는 구글에 투자한 KPCB, 세쿼이아캐피털 등 20여 개의 벤처캐피털 업체가 있다. 대학 동쪽에 있는 길인 엘카미노레알에는 구글, 오라클, 애플, 인텔, 시스코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뒤 한국에 돌아와 게임 ‘쿠키런’을 개발한 김종흔 데브시스터즈 대표는 “스탠퍼드대의 경쟁력은 벤처캐피털이 대학의 훌륭한 인재와 기술에 투자하고, 대기업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투자를 회수하는 ‘원스톱 창업생태계’가 구성돼 있는 데서 나온다”고 했다. 그는 “스탠퍼드대에서는 유학생들도 다양한 성공 사례를 보며 창업을 꿈꾸게 된다”며 “한국도 창조경제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만이 아니라 대기업, 대학 등 기존 자원들이 어우러지는 벤처생태계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샌타클래라=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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